공무원, 행정 집행하며 "법은 평등하지 않다" 말해 말썽

공무원이 "법은 평등하지 않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사진은 지난 5월20일 있었던 사천시 곤명면 성방리 주민들의 시위 모습.

“법은 평등하지 않죠. (중략) 법이 어째 평등합니까, 예를 들어서 판사(에게서) 판결 받을 적에도 얼굴이 예쁜 사람은 형을 좀 덜 받는다는 소리 안 있습니까?”

과연 누구의 말일까. 누가 들어도 지나치다 싶은 이 말을 6급 시청 공무원이 민원인들에게 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이는 지난 16일 경남 사천시청 소속 한 공무원이 마을에 토석채취장이 들어서려는 것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찾아가 한 말이다.

이 공무원은 곤명면 성방리 마을에 붙은 ‘주민안전 생존권 위협 석산개발 반대한다’ 등의 내용으로 나붙은 펼침막이 불법설치물이라며 철거하기 위해 현장에 나갔다.

하지만 마을주민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면서 실랑이가 오갔다.

마을주민들은 남강댐용수증대사업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고속도로입구 등 사천전역에 붙었는데도 철거하지 않으면서 작은 시골마을에 몇 개밖에 붙지 않은 채석장 반대 펼침막만 굳이 문제 삼느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법은 평등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진 것이다.

곤명면 딱밭골 입구에 나붙은 펼침막들. 이 펼침막은 평소 딱밭골에 모여 사는 10여 가구 주민들만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에 이 공무원은 “법은 평등하지 않다”고 항변하며 판사도 얼굴이 예쁜 사람에게는 형을 덜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식으로 말해 마을주민들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마을주민들은 "그런게 어딨나, 법대로 판결하는 것이지." "지금 여성 비하 발언인 것 알아요?" "형편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라. 가!" 이런 말들로 강력 비난했다. 그들은 또 "말에 책임질 것"을 요구하며 그의 발언을 녹음해 16일 사천시청 홈페이지 열린시장실 '시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 올렸다. 다음은 녹음 내용 중 일부.



이 녹음 내용과 함께 관련 공무원의 무책임한 발언을 성토하는 글이 올랐으나 김수영 시장을 비롯한 사천시는 사흘이 지난 19일까지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자가 취재에 들어가자 이튿날인 20일 '건축과' 이름으로 답글을 남겼다.

사천시는 답글에서 행정상이 아닌 사회현상으로 해석해 "법은 평등하지 않다"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적인 불평등 현상에서 접근하여 표현하였던 것"이라고 토를 달았다.

그리고는 조선일보 2003년5월21일자 기사를 덧붙이며  "민원인이 주장한 평등관계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것"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기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근 노르웨이 한 대학에서 실험을 한 결과 범죄 용의자의 외모가 재판에서 받는 형량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잘 생겼느냐 못 생겼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얼굴을 직접 보지 않고서도 용의자 신상 명세서에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기록한 것이 미인이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형량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하 생략)

이와 관련 사천시청 한 고위직 간부는 지난 19일 입장을 묻자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한 뒤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로서 상당히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라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당장 징계를 주거나 할 수는 없고 적절한 조치는 취해야 할 것으로 본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성방리 마을주민들은 해당 공무원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어서 이 문제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마을주민들은 이 문제를 국가권익위원회에 알리고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법은 평등하지 않다.” 사회현상이든 무엇이든 그 진실성 여부는 남겨 두더라도, 고속도로 입구 등 사천시 전역에 나부끼며 엄청난 광고효과를 발휘하는 펼침막과 10여 가구 모여 사는 산골짜기 맨 끝마을에 달랑 몇 개 나붙은 펼침막 사이에 '법은 평등하지 않다'는 말을 갖다 대는 것에 정당성을 인정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비록 현실에서는 법이 불평등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공무원이 행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법은 평등하지 않다"고 공언한 것은 '직분을 망각한 것'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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