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교육이야기


2012년 6월 시범 운영을 거쳐 2013년부터 일선 초중고교에서 전면 시행된 ‘학업중단숙려제’는 자퇴 · 유예 등 학업중단 의사를 밝힌 학생들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다. 그 취지와 제도적 타당성에는 일선 교사로서 일단 동의한다. 다만 그 운용에 대한 부적절한 요소에 대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50대 중반으로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자청하여 맡은 우리 반 아이들의 가정 사정은 그야 말로 농촌지역 학생들이 당면한 여러 문제의 전형을 보여 줄 만큼 심각했다. 입학한지 겨우 일주일 만에 자퇴의사를 밝힌 우리반의 한 아이는 마침내 지난 금요일 자퇴원을 제출하고 말았다. 어머니와 함께 와서 아무런 말도 없이 자퇴원에 제 이름 석자를 쓰고 어머니 역시 별 다른 말 없이 자퇴원에 도장을 찍고, 교사인 나 그리고 곤양고등학교와 짧은 한 달 동안의 인연을 끝냈다.

학교에 온 그 아이의 어머니는 초췌해 보였다. 표정과 분위기에서 삶의 모진 국면에 봉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일면식도 없는 내가, 다만 그 아이의 한 달 담임이었던 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물어 볼 수 없었다. 그 아이의 표정 역시 매우 굳어 있었는데 어떤 이유라도 학교라는 곳이 그 아이를 품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매우 무겁고 어두웠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의 학업중단을 고민(숙려)해 본다는 취지의 학업중단숙려제 때문에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학업중단숙려제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보니 참으로 본 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학업을 중단하는 아이들의 문제를 부모와 같이 깊이 고민해보고 학교를 계속 다니게 하자는 학업중단숙려제의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 상황은 부모의 문제로부터 기인한 것이어서 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인데다가 사천을 떠나 멀리 다른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담임교사가 나서서 그 아이의 부모에게 학업중단을 숙려해보자는 그 어떤 명분도 없는 상황이었다. 학업중단숙려제의 몇 가지 지침을 보니 정말 탁상공론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학업중단숙려제에 따라 그 아이와 부모가 동의를 하든 말든 앞으로 그 아이는 15일 정도 곤양고 학적을 유지 하게 될 것이다. 아이가 학교를 나오지 않는 원인이 온전히 부모에게 있는 이런 참담한 상황은 현재 이 나라 기층민중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학업중단숙려제라는 매우 피상적인 제도로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늘도 학교 현장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