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원 경상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

모두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풀어내는 얘기는 신기하다.

흔히 현대 판타지(혹은 하이 판타지)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은 존 로널드 로얼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이라는 분이다. 그는 영국의 영어학 교수였는데, 주로 자녀들을 위해 글을 썼다. 이글들이 그의 인생 후반에 발표되면서 작가로서도 큰 명성을 얻었다.

톨킨은 인간 세계와는 다른 ‘가운데 땅’이라는 새로운 공간과, 인간과는 다른 ‘호빗’이라 불리는 종족을 만들어 내어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호빗은 키가 보통 인간의 허리 정도까지이다. 발등에는 곱슬곱슬한 털이 나있고 발바닥 가죽은 매우 튼튼해서 신발을 신지 않는다. 호빗이란 말은 ‘굴 파는 사람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요정들은 호빗을 ‘페리안나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대표적 저서로 ‘반지의 제왕’(1954~1955)과 ‘호빗’(1936) 등이 있다. 그의 소설들은 영화와 게임으로 제작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3년 인도네시아의 플로레스 섬에서 탐사를 하던 호주의 인류학자는 희한하게 생긴 뼈를 발견한다. 이 뼈를 조사하니 아주 이상한 특성을 갖고 있었다. 이 뼈는 성인의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키가 90cm정도로 아주 왜소했고 뇌 크기도 현대인에 비해 아주 작았다. 발견한 과학자들은 이 뼈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났던 새로운 종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플로레스 섬에는 피그미 족을 비롯하여 몸집이 작은 족속들이 많이 알려져 있었으므로 그 족속 중 하나일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했지만, 작은 머리와 뇌의 크기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발견 이후에도 비슷한 크기의 뼈를 가진 12개체가 더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이 뼈를 단서로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종으로 간주하여 이 뼈를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라 이름 붙였고, 작은 키 때문에 ‘호빗’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새로운 종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왜소증과 같은 병에 걸린 인류의 것일 가능성도 있고, 인류의 질병 중에는 플로레스 지방에서 발견된 뼈와 유사한 기형을 일으키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논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소설 속의 ‘호빗’과 비슷한 왜소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톨킨이 상상한 인간과 다른 종족 ‘호빗’은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에서 발굴된 ‘호빗’과는 다르겠지만, 그의 소설에서 따온 별명 ‘호빗’은 이제 생물학 교과서에도 실리게 되었다. 심심풀이 삼아 한 번쯤 철없는 상상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호빗도 영화나 소설에서 만나는 호빗처럼 튼튼한 발가죽과 보송보송한 털을 가지고 있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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