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ㆍ중등교육법, 제45조에 의하면 ‘고등학교 교육은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 및 기초적인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로 되어 있다. 이것이 현행 고등학교 교육의 법적인 목표다. 그런데 고등학교는 이미 대학진학을 위한 하위 기관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법 조문에는 ‘대학진학을 위해’라는 말은 단 한 구절도 없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교는 ‘대학진학을 위해’ 일로 매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대학진학이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교육목적을 지배하는 지금의 기이한 구조 이면에는 자본의 논리가 숨어있다. 자본의 논리란 교육행위와 교육목적을 자본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자본의 기준에 의해 모든 교육적 행위를 조정(調整)하고 재단(裁斷)해버린다.

교육현장에서 이러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극명한 예는 바로 교육을 단기간의 ‘성과’로 측정하는데 있다. 즉, 고등학교 교육의 성과는 “대학진학을 많이 했는가?” 또는 “얼마나 좋은 대학에 진학했는가?” 가 그 기준이다.

방학 중 교사 대상 연수 제목의 대부분은 “배움 중심”,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이 단어는 현 경상남도 교육감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육감은 얼마 전 초·중등 교감연수에서 자신의 지난 2년 동안의 공과를 말하면서 수업의 변화를 특히 강조했다 한다. 그리고 며칠 뒤 경남교육청은 경상대학교 대학진학박람회에 대학에 잘 가는 ‘학생부 전형 토크콘서트’를 주관하여 대학에 잘 가는 방법을 설명했다. 수업을 바꿔 좋은 대학을 가자는 것인가? 아니면 대학을 잘 가기 위해 수업을 바꾸자는 것인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선진 교육, 즉 다양한 수업방법의 변화와 교사의 변화를 요구한다. 무엇을 위해? 지금의 분위기라면 좋은 대학 진학의 성과를 위해서인 모양이다. 입시 교육이 살인적이라고 말하면서 한 쪽으로 대학을 위해 모든 것을 바꾸고, 또 한 쪽으로는 수업방법과 교사의 변화를 촉구하는 지금의 이 상황이 현장 교사인 내게는 매우 비논리적인 풍경으로 비쳐진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