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진주박물관-뉴스사천 공동기획> 국제무역항 늑도 탐구 ③

국립진주박물관이 사적 제450호인 ‘사천 늑도 유적’ 발굴 30주년을 맞아 특별전 ‘국제무역항 늑도와 하루노쓰지’(07. 19 ~ 10. 16)를 개최하고 있다. 이에 <뉴스사천>은 늑도 유적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널리 알리는 뜻에서 박물관의 도움으로 4회에 걸쳐 ‘국제무역항 늑도’를 기획 보도한다. (편집자주)


 

▲ 늑도 유적 C지구 주거지군 노출 모습. 구들 흔적을 볼 수 있다. (사진=국립진주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주거생활
2000여 년 전 늑도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국제무역항 늑도 탐구①’ 편에서 조금 엿본 바 있다. 늑도에서는 모두 289기의 주거지 흔적이 발견됐는데, 그 대부분이 원형의 움집이었다.

고래나 구들, 부뚜막의 흔적으로 봐서 당시에도 일종의 온돌시설이 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원형이 아닌 몇몇 사각형 움집은 그 사용 시기가 더 오래됐다. 그리고 움집 말고도 고상건물지 21기가 발견됐는데, 이것들은 나무기둥을 세우고 마루 바닥을 지면보다 높게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주로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늑도의 주거지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온돌시설이다. 원형 주거지에서 구들이 발견된 게 처음이거니와, 구들 문화는 북방계 문화로써 기원전 3세기경부터 한반도 북쪽에서 점차 남쪽으로 전달됐다는 기존 인식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늑도의 온돌시설이 발견되기 전까지 남한에서 가장 빠른 시기로 알려진 온돌 유적은 기원 직후쯤으로 추정되는 미사리나 수원 유적이다.

▲ 늑도에서 출토된 각종 철기류. (사진=국립진주박물관)

수렵·채집 어로생활
늑도에서 곡물자원의 채집이나 수렵과 관련된 유물의 출토량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대부분의 식량자원을 외부로부터 공급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물론 석제, 철제 낫이 있지만 늑도가 경작이 어려운 조건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곡물자원도 교역의 대상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하여 어로활동과 관련된 도구들의 사용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데, 이러한 양상은 역시 곡물과 동물자원을 외부에서 반입하고 해산물자원을 자급했던 당시 늑도의 상황을 말해 준다.

특히 전복따개는 바위에 붙은 전복을 딸 때 쓰는 도구로 빗창이라고도 부르는데, 늑도의 경우 주로 사슴뿔과 사슴뼈를 이용해 만들었다. 작살과 낚시바늘도 여럿 발견돼 어로행위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철기 생산
늑도 A지구에서는 남한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노벽편, 송풍관편, 철 찌꺼기, 단조박편 등 철기생산 관련 자료들이 확인되었다. 당시 일반적인 철기 생산 공정은 1차적으로 철을 만드는 제련, 생산된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련, 철을 두드려 철기를 만드는 단야 또는 철을 녹이는 용해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늑도에서는 제련작업의 흔적으로 나타나는 유출재(流出滓)가 전혀 출토되지 않았기 때문에 철광석에서 철을 만들어 내는 제련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다만, 출토된 노벽・송풍관편 등의 자료로 미루어 볼 때, 철 원료를 수입하여 이를 가공, 제작하는 정련・단야・용해 작업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 늑도에서 출토된 각종 뼈바늘. (사진=국립진주박물관)

천 생산
옷은 인간의 생활필수품이다. 의복을 만드는 옷감의 출현은 신석기시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직물 자료는 실물로 확인되지 않았고, 단지 토기에 찍힌 자국이나 가락바퀴(紡錘車)가 전부였다. 청동기시대에 들어 옷감의 생산은 더욱 발전하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청동기에 부착되어 있는 상태로 일부만 확인될 뿐이다.

초기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는 비단, 삼베 등의 직물자료와 천과 실을 만들 때 사용된 목제 도구인 바디, 실감개 등이 알려져 있다.

늑도에서는 직물자료 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천의 생산을 가늠케 하는 대량의 가락바퀴와 뼈바늘이 출토되었다. 가락바퀴는 옷감을 짜기 위한 실을 만드는데 사용된 도구이다. 흙, 돌, 뼈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었으며, 형태는 원판형, 구슬형, 원추형으로 다양하고 중앙에 둥근 구멍이 있다. 둥근 구멍에 나무 막대를 끼워 축으로 하고 섬유를 축에 연결한 뒤 회전시켜 꼬여진 실을 만들게 된다.

거래와 기록
국제무역항이었던 늑도에서는 물물교환 또는 매매가 이루어지는 시장이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시장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거래의 흔적들이 유물로 출토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중국 화폐인 동전과 다양한 재질의 저울추를 들 수 있다.

앞서도 소개한 중국 화폐 반량전은 기원전 175~118년까지 주조되었고, 오수전은 기원전 118년부터 주조되기 시작해 수 백 년 동안 사용되었다. 이 화폐가 늑도에서 각각 4점과 1점 출토됐다.

거래를 짐작케 하는 또 하나의 유물은 저울추다. 늑도 유적에선 토제, 석제, 철제 등 다양한 재질의 저울추가 나왔다. 이러한 저울추의 무게가 정량화・도량화 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규격화된 무게의 추를 사용하지 않는 대저울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지면 이에 대한 기록 또한 있기 마련이다. 늑도에선 이와 관련한 유물도 출토되었는데 벼루로 추정되는 석제품, 종이가 일반화되기 이전에 사용되었던 죽간, 목간의 오자를 고치기 위해 지우개 역할을 한 손칼이 그것이다. 결국 2000여 년 전 늑도에선 다양한 물건을 거래했고 그 결과를 문자로 남기는 작업까지 이뤄졌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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