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숨고르기

▲ 김재원 경상대 미생물학과 교수

아직은 이른 시간인데 한 사내가 술에 찌든 모습으로 힘이 빠진 모습으로 힘겨운 걸음걸이로 지나가고 있었다. 안쓰러운 눈길로 이 사람을 유심히 보던 한 노인이 혀를 차며 한 말씀하신다. “저 사람 참....쯧. 저 사람 대단한 집안의 아들이었어. 대대로 농사도 크게 지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근동에서 존경받는 분들이었는데.... 물려준 재산을 흥청망청 날리더니 결국 저 꼴이라니...”

흥청망청이란 말은 자기 마음대로 방탕하여 즐기거나, 돈이나 재물을 마구 써버리는 것을 일컫는 말로 자주 사용한다. 이 말은 연산군(燕山君)이 기생 ‘흥청’들과 어울려 노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최근에 상영된 ‘간신’이라는 영화는 이 얘기를 다루고 있다. 연산군은 갑자사화(甲子士禍) 이후 정사를 돌보지 아니하고 향락과 쾌락에 빠진다. 채홍사(採紅使)를 임명하여 전국에 있는 아름다운 처녀와 건강한 말을 뽑고, 각 고을에서 미녀와 기생들을 관리하게 하였다.

또한 기생이라는 명칭 대신에 ‘운평(運平)’으로 부르게 하였다. 이들 운평 중에서 왕에게 간택 받은 자를 흥청(興靑)’이라 하였는데, 그 인원이 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쾌락에 빠진 연산군은 정사는 멀리한 채 흥청들을 ‘경회루(慶會樓)’로 불러 방탕한 생활과 사치로 국고를 낭비하였고, 결국은 왕위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후로, ‘흥청’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라는 의미로 ‘흥청망국(興淸亡國)’이란 말이 생기게 되었고, 후에 ‘흥청망청(興淸亡淸)’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흥할 ‘흥(興)’과 망할 ‘망’(亡)이 대비되어 묘한 느낌을 갖게 하는 말이다.

소위 ‘최순실 국정농단’이란 사건에 등장하는 어휘들을 보고 있노라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촛불집회, 탄핵소추 등과 같은 말은 차치하고라도 태반주사, 백옥주사, 마늘주사를 비롯하여 프로포폴, 비아그라 등, 도대체가 어리둥절한 단어의 나열을 보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국가의 지도자가 벌인 일에 국민 모두가, 누구나 할 것 없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의상구입과 가방의 구입에 돈을 얼마나 썼으며, 얼굴 미용을 위해서 어떤 주사를 맞았는지를 캐내고, 보도되는 것이 즐거운 일이진 않겠으나, 문제의 핵심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직무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다 하였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서 흥청망청이란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연산군 시대의 흥청망청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 무엇이 다를 것인가? 누가 채홍사 역할을 했으며, 누가 흥청을 운영 했으며, 그것을 도운 이는 누구인가? 탄핵은 왜 일어났으며, 그로써 국민들의 다친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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