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숨고르기]

▲ 김재원 경상대 미생물학과 교수

가까운 지인들이 일 년에 한두 번 식사를 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임인지라 여러 가지 얘기들을 들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정해진 주제는 없지만 누군가 한마디 던져 놓으면, 그에 대한 얘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번 모임도 예외는 아니어서 누군가 최근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의견을 얘기하자마자 여러 얘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저런 의견이 오가다 결국 모두 동의한 말은 ‘우리나라 국민은 착해도 너무 착하다’로 귀결되었다.

미국에서 1992년 일어난 ‘4.29 LA 폭동’ 사건으로 단 사흘 동안 53명이 사망하고, 4000여 명이 다쳤고 1만 4000명이 체포됐으며 600동 이상의 건물이 불탔다. 우리 한인 교포들의  피해가 막대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우리의 기억에도 깊숙하게 남아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어떤가? 매주 토요일 마다 광화문에서 촛불 집회가 열려도 과격 시위가 전혀 없음은 물론이요, 수십만의 인파가 머물렀던 자리에 쓰레기가 없다는 것에 우리 스스로도 놀란다. 착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라에 위기가 생길 때마다, 우리 국민은 나라를 구하였다. 임진년에 일어난 일본 침략에 맞서 백성들이 스스로 일어나 의병이 되었고, 일본 식민 통치에 맞서 항거한 수많은 의사, 열사 그리고 독립 전쟁을 했던 선조들이 그랬다. 심하게 얘기하면 우리 역사 반만년 동안  이 나라를 지켜 낸 것은 일반 백성이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절대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1907년에 일본의 간교한 책략에 말려 나라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이 빚을 갚기 위해 일어난 운동이 이른바 ‘국채보상운동’이다. 백성들은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모았다. 일반 백성들은 돈이 없으므로, 담배와 술을 끊었다. 그래서 모은 돈을 나라의 빚을 갚으라고 내준 것이다. 결국 일본의 책략에 말려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이 운동이야 말로 우리 국민이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는 착한 국민인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착해도 너무 착한 국민이다.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난 지 70년 만에 ‘IMF 금융위기’를 맞는다. 나라의 금고가 바닥나 전체 경제가 무너지고 와해 될 위기에, 이 착한 국민은 ‘금 모으기 운동’을 한다. 아이의 돌 반지를, 상으로 받은 금메달을, 결혼 기념으로 만든 반지를 순순히 빼내어 모은 금이 227톤에 달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자 금을 내겠다고 은행 앞에 긴 줄을 섰던 우리 국민은 착해도 너무 너무 착한 국민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올해는 국채보상운동 1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또 한번 나라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또 너무 너무 착한 국민들이 이 위기를 넘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들이 그 좋아 하던 담배와 술을 끊고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선 이후 110년 동안 소위 권력자들과 지식인들이 한 일은 무엇인가? 이젠 그들이 대답할 차례가 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정말로 너무나 착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