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병주가 만난 사람] ② 택시 지입제 양심고백 정승태 씨

택시업체 ‘지입제’ 고발로 고군분투
“행정·경찰, 업체 편들어 분통 터져”
“내 잘못 인정받기가 이렇게 힘들 줄”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돈과 권력 앞에서 온갖 불법과 반칙이 횡행하는 시대. 대한민국의 오늘을 이렇게 정의한다면 너무 자학하는 일일까. 이른 바 ‘최순실’을 매개로 드러나고 있는 자본과 권력의 야합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 자괴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촛불’ 덕에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이어갈 수 있어 다행이다. 물론 그 과정에 많은 노력과 희생이 따를 것임은 자명하다.

택시 지입제를 양심고백한 정승태 씨.

지난해 12월,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선 흔치 않은 한 가지 판결이 내려졌다. 택시업체가 택시기사에게 명의를 빌려주어 기사는 회사 택시를 개인택시처럼 운행하고, 업체는 그 대가로 기사로부터 일정한 돈을 받는 형태, 즉 ‘지입제’를 인정한 판결이었다. 지입제는 택시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업체와 기사 양쪽이 다 처벌받는 등의 이유로 사실로 드러나기가 쉽지 않다.

이날 판결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지입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어느 택시기사의 양심고백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자신의 진술을 확인하기보다 업체 감싸기에 급급한 공무원들과 싸워야 했고, 양심고백에서 판결까지 2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소비했다. 업체는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사천시는 이 업체에 행정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최순실 사태가 그냥 터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부정부패가 사회에 만연해 있는 거죠. 택시기사가 처벌 받을 줄 뻔히 알면서도 지입제 했다고 고백하면 관련 내용을 쭉 확인하면 될 텐데, 사천시는 수사권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경찰은 업체 쪽 말만 믿고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정승태(61) 씨. 그는 삼천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주로 음향사업을 해오던 그가 택시를 몰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2013년 봄. 더 늙기 전에 택시운전 경력을 쌓아 나중에 개인택시라도 인수해 노후에 대비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택시를 모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벌이도 시원찮았고, 무엇보다 건강에 무리가 왔다. 두 달이 채 못 되어 택시 일을 접었다. 그가 다시 택시 핸들을 잡은 건 그해 8월이었다. 업체 내 지인을 통해 지입제가 가능하다는 암시를 받았다. 새 차를 구입해 개인택시처럼 마음껏 사용하면 기존의 음향사업도 간간이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또 다른 지인에게 돈을 빌려 새 차를 구입했고, 회사는 이 차를 택시로 등록했다.

그 후 꼭 1년이 지난 즈음에 문제가 터졌다. 회사가 정 씨가 몰던 택시차량 면허를 사천시에 휴면처리 해버린 것이다. 정 씨는 회사의 일방적 일 처리에 항의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할 테면 해봐라”는 우격다짐.

“저는 지금도 이해가 잘 안 돼요. 그 때 제가 제 때 차량 보험료를 못 냈던 것은 맞아요. 일 때문에 하필 통영에 며칠 가 있을 땐데, 회사에서 먼저 내어주면 곧 갚겠노라 말했는데 들어주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다고 택시 면허를 휴면처리 해버리면 저는 뭐가 됩니까? 택시차량만 회사에 뺏길 판이었지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시를 찾아간 겁니다.”

택시 지입제 양심고백을 하기 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정승태 씨.

정 씨는 2014년 9월 초에 사천시 교통행정과를 찾아가 자초지정을 얘기했다. 사실상 자신의 잘못과 함께 양심선언을 한 셈이었다. 그러나 수차례 면담과 자료제출 뒤 돌아온 건 비아냥이었다.

“한 번은 담당 계장이 나를 부르더니 ‘승태 씨, 이거 재판으로 가도 4~5년 걸립니다. 그냥 좋게 해결하세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대단히 서운했죠. 업체와 뭔가 유착되어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당시 택시업체는 정 씨로부터 돈을 빌려 차량을 구입했고, 매달 사납금을 일정금액 덜 받음으로써 차 값을 갚아나가고 있다고 사천시에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사천시 담당자는 “수사권이 없어 지입제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렵다”며 정 씨에게 이해를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사천시의 이런 태도는 무척 아쉽다. 정 씨는 1년 간 해당 업체에 소속돼 있었으나 고용관계는 성립돼 있지 않았다. 해당 차량 관리도 본인이 직접 했다. 따라서 4대 보험 납부 현황, 차량정비 현황 등 기본적인 사항만 점검했더라도 비정상적인 모습을 여럿 발견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천시는 해당 업체를 사법당국에 고발하기는커녕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정 씨는 이 과정에 송도근 시장을 만나 직접 하소연 해보려 했으나 면담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음에 다시 한 번 울분을 삼켜야 했다.

“할 수 없이 경찰을 찾아갔죠. 그런데 여기도 똑 같은 거야. 한 번은 대질 신문을 받게 됐는데 온도 차가 확 느껴집디다. 조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석 달 만에 내사종결 통보를 하더군요. 하도 억울해서 (사천경찰서)청문감사관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더 가관이더라고요. 감사관이라는 사람이 내 이름과 민원 내용을 자신이 보던 신문 한 귀퉁이에 받아 적고는 연락을 기다리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사람들이 나라 녹을 먹고 산다는 것에 분하고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청문감사관실에선 정 씨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재조사가 이뤄졌다. <뉴스사천>에서 관련 내용을 취재해 보도한 뒤였다. 이후 경찰의 재조사는 일사천리로 이뤄져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2015년 말, 법원은 택시업체와 이 업체 사장, 그리고 정 씨에게 각각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정 씨는 수긍한 반면 업체 측은 이에 반발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14일 1심 재판부는 해당 업체의 지입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판단 근거는 새로운 게 없었다. 정 씨가 업체에 정상적으로 채용되지 않은 점, 차량 구입부터 유지관리까지 정 씨가 도맡아 해온 점 등이 주목받았다.

정승태 씨는 "바라던 판결 결과를 받았지만 기쁘기보단 씁쓸함이 크다"고 말했다.

정 씨는 그가 바라던 판결 결과를 받았지만 기쁘기보단 씁쓸함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트레스가 심했다. 편히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내가 내 잘못 고백했는데, 그걸 인정받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행정이나 경찰은 믿을 수가 없었고, 법과 정의란 말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사천시는 지입제를 인정한 법원 판결에 따라 곧 행정처분을 내린다. 하지만 이번에도 업체 쪽 편을 드는 모양새다. 관련법에선 업체가 보유한 32대의 택시 사업면허를 모두 취소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지만 문제가 된 택시 1대만 감차하는 파격적 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정 씨는 더욱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세상이 썩었지, 더러운 세상! 이러니 최순실이가 날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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