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누룩꽃과 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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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누룩꽃과 소주
  • 임철규 호남지방통계청 농어업조사과장
  • 승인 2017.01.23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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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규 호남지방통계청 농어업조사과장
▲ 임철규 호남지방통계청 농어업조사과장

오랜만엔 허물없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에게는 특별한 별명이 있다. 우리 집은 마을 한가운데 있어서 늘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친구의 집은 제일 멀었는데도 항상 함께였다. 친구의 별명은 ‘지게미’였다.

     “얌마~ 그때 참 기막혔제?”
     “기억도 읍따... 허허허”

 지금처럼 설날이 가까워졌을 때였다. 한 참을 뛰어놀다보니 배가 고팠다. 고구마를 한 입씩 돌아가며 먹었지만 허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먹을 것을 찾아 집안 곳곳을 뒤졌다. 마침 막걸리를 걸러내고 놓아 둔 술지게미가 친구의 눈에 들어왔다.

     “안 된다~” 한 친구가 말렸으나
     “괘안타~”

말릴 틈도 없이 친구의 입으로 한 움큼 푹 들어갔다. 다른 친구들도 한 움큼씩 허겁지겁 먹었다. 약간 단 맛도 나고 밥맛도 나고 텁텁했지만 맛있었다. 한 소쿠리를 다 비웠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제일 먼저 ‘지게미’가 고꾸라졌다. 다른 친구들도 다리가 휘청~ 휘청~ 모두들 얼굴이 빨개지고 쓰러졌다. 그날 이후 친구의 별명은 술지게미에서 ‘술’자를 떼어낸 ‘지게미’로 불리게 되었다.

 설날이 다가오면 제일 바쁜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우선 술부터 앉히셨는데 정성을 다했다. 머리를 감고 정갈하게 몸가짐을 하신 후 시루에 쌀을 넣고 고두밥을 지었다. 고두밥을 짓고 차갑게 식힌 다음 누룩과 섞었다. 그리고는 안방에 술독을 두고 따뜻하게 이불로 겹겹이 덮어주고 신주단지 모시는 것처럼 조심했다. 나와 동생들은 술독 옆에도 가지 못했다. 부정이 타면 술이 골아버린다고 했다. 술 익는 냄새가 술술 피어오르면 조심스레 뚜껑을 열어보시곤 했다.
 
어린 나에게 술을 빚는 어머니의 모습은 커다란 의식처럼 느꼈었다. 누룩은 주로 장마철에 띄우셨다. 장마 때는 애써서 습도랑 온도를 맞추지 않아도 누룩이 잘 떠서 한꺼번에 누룩을 띄웠다가 잘 말려서 두고두고 썼던 것이다.

술을 앉히고 며칠 후 어머니의 표정으로 술 맛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면 술이 잘 익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제주로 쓸 맑은 청주를 담았다. 청주를 퍼내고 술을 체에 걸러냈다. 술지게미를 꼭 짜내고 누룩냄새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 떠서 아버지께 드렸다.

60년대 말까지 한국인의 술은 막걸리였다. 농민이 도시로 이동을 하여 노동자가 되면서 막걸리보다 맥주와 소주를 더 즐기게 되었다. 서민의 술은 점점 소주로 바뀌어 갔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대포집에서 쓰디쓴 소주 한잔으로 피로를 풀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 술집이나 고기 집에 가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소주 값이다. 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소주 값이 어느새 5천원을 받는 식당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서민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그동안 고급 음식점등에서는 소주를 한 병에 5천원에 판매하는 곳들은 간간히 있었다. 하지만 일반음식점에서도 5천원에 소주를 판매하는 곳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식품목 중 소주 가격은 전년 대비 11.7%가 올랐다. 이는 통계청이 소비자물가지수 품목에 외식 소주를 추가해 조사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역대 최고의 상승률이다. 2001~2002년 사이 8%가 뛰어오른 이후 한동안 가격 상승률이 높지 않았던 외식 소주 값은 2014~2015년 3.7%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다 작년 상승률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외식물가 상승을 주도한 소주 값이 이렇게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말 주류업체들이 잇따라 소주 출고가를 올리면서다. 서비스업인 외식업계가 계산하기 복잡한 100원 단위가 아닌 500원 또는 1천원 단위로 올리면서 주류업체의 인상 수준보다 더 가파른 상승률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서민물가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올라가면서 사실상 오르지 않은 품목이 없다고 할 정도로 높은 인상률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걸리와 소주는 여전히 국민의 술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서민의 술이다. 설날 아침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께 막걸리 한 잔 올려야 겠다. 정유년 새해에는 뽀얀 솜털처럼 누룩꽃이 피듯이 서민물가도 안정이 되어 훈훈한 인심의 꽃이 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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