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교육이야기]

1910년 한‧일 합방을 전후하여 1945년 해방까지 우리를 식민 통치한 일본을 위해 민족적 양심과 영혼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들을 위해 충성을 다한 친일인사들 4389명이 망라된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간)이 발간될 쯤. 그 명단에 오른 사람들의 후손과 직‧간접적으로 관계 있는 사람들의 반대 여론이 거셌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간은 누구나 치부를 감추고 싶어 한다. 한 순간의 판단착오로 생긴 실수이든, 아니면 고의적인 일이든 시간이 지나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일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을 숨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일이 자신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여러 사람들에게 파급효과를 주는 것이라면 그 일은 감추어서는 안 되는 일이 되어 버린다.

1947년 해방된 우리나라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고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활동이 시작되었으나 기득권을 쥐고 있던 친일파들의 끈질긴 방해공작으로 끝내 그 법은 폐기되고 만다. 이것으로 식민통치에 앞장서 반민족행위를 한 사람들은 면죄부를 받았는데 친일파들이 적극적으로 식민시절 그들의 치부를 가리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역설적으로 독립된 이 나라가 제공한 것이다.

친일의 무리들은 해방공간에서 교묘한 이념적 변신을 꾀했다. 그것은 미국을 등에 업은 왜곡된 반민족적 자유민주주의였다. 물론 대부분의 민주주의자들은 그러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변조한 민주주의 이념을 이용한 친일파들은 곧장 자신들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반민주, 즉 좌파 혹은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웠고 그 작전은 매우 유효했으며 비극적인 6.25를 기화로 그들의 의도는 우리사회에 대부분 용인되었다. 즉, 친일의 모습을 가릴 수 있는 자유와 민주라는 가면을 뒤집어 쓴 것이다.

기어코 온갖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이 정부는 여러 가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었고 그것이 공개되자 엄청난 오류가 드러났다. 그 오류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고 반민족, 반민주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억지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가면을 쓰고 움직이던 반민족의 친일세력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저들의 의도를 드러내는 시절이 다시 도래한 것이다. 몇 년 전 엄청난 반응을 보이며 상영되었던 ‘변호인’이라는 영화의 대사 중에 “내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울분을 토하던 주인공처럼 우리는, 우리의 후세들을 위해 변신에 변신을 꾀하는 친일세력들의 불순한 의도에 맞서 진실을 교육해야 할 교사로서의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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