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년을 사천시에서 근무하다가 2017년 3월 진주시에 있는 OO고등학교로 학교를 옮겼다. OO고등학교는 진주 시내 공립 인문계 고등학교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대학입시가 이 학교의 지상목표인 셈인데 그러한 학교 운영 목표에 내가 얼마나 잘 부합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새로 옮긴 학교인지라 이런 저런 조정이 어려운 측면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말없이 수행하기로 마음먹었기에 1학년 담임이 되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1학년을 작년에도 담임했지만 작년 아이들은 비록 인문계이기는 하지만 농촌의 아이들이라 이 학교 학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아침 8시까지 등교한 아이들은 저녁 10시까지 14시간을 학교에 있다. 하루 7교시 정규 수업과 방과 후 수업의 8교시, 그리고 밤 10시까지 또 자율학습을 한다. 불과 한 달 전에 이들은 중학생이었고 이런 생활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별 불만이 없다. 그저 견디는 모습이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반 학생들을 상담해 본 결과 대부분 학교를 마치고 난 뒤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그 학원 수업은 거의 밤 12시가 되어야 끝이 난다고 했다.

아이들은 아직 3월 초인데 힘이 없다. 수업시간에 대부분 꾸벅 꾸벅 존다. 모든 것에 둔감하다. 크게 기뻐하지도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저 덤덤하다. 마치 억센 푸성귀를 뜨거운 물에 데쳐놓은 것처럼 생기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14시간의 학교생활과 이어지는 학원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싱싱할 리가 만무하다. 이런 아이들을 우리는 이 나라의 미래라고 부른다. 이 나라의 미래들은 학교에서 이렇게 매일 시들어 가고 있다.

선배들도 그러했고,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런 학교 생활정도는 견뎌야 하며, 이런 것도 견디지 못하면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기성세대인 우리는, 매일 이들을 겁박하고 또 질책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매일 조금씩 생기를 잃고, 매일 조금씩 인간성을 포기하며, 매일 조금씩 희망을 접어간다. 그런데 이 사회는 이들을 이 나라 그리고 우리 미래의 희망이라 부른다.

학교 중앙 현관에는 어느 학교나 비슷하지만 “희망”, “꿈”, “정의”, “목표”라는 단어들이 즐비하다. 하루 14시간의 학교생활과 2~3시간의 학원생활이 과연 이들에게 희망이나 꿈, 정의와 목표를 제공할지도 의문이지만 이들이 참으로 꿈꾸는 희망과 정의가 지금 학교에 즐비한 그 단어들과 의미가 비슷한지도 사실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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