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요즘 10대들은 놀 거리가 많아서 그다지 관심 없다고 하던데, 예전에는 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합법적 일탈(장르소설인 무협이나 만화책과 비교해보라)이었다.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연표 정도는 기본으로 외우고 캐릭터 분석을 통해 각자 좋아하던 탐정을 세계 최고라고 우기기도 했다. 아무튼 그 시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던 탐정은 에르큘 포와로(Hercule Poirot)였고 가장 좋아하던 작품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Murder on the Orient Express)이었으니, 따라서 최고의 추리영화도 1974년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이었다.

케네스 브레너가 감독과 주연까지 도맡아 열연한 2017년作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세월이 흐른 만큼 때깔도 더 고와졌고 돈 들인 티도 팍팍 난다. 출연진도 1974년작에 비견될 정도로 화려(이름값만 치자면 1974년작이 훨씬 더 낫다. 그야말로 초호화캐스팅이다)해졌다. 이제 초특급 여객열차답게 KTX처럼 달리기만 하면 된다. 과연?

프랑스인이 아니라 벨기에 신사라고 말하는 에르큘 포와로는 작달막한 키에 멋진 콧수염과 회색빛 뇌세포를 강조하는 ‘잘난척대마왕’이다. 원작소설이 그랬고 1974년작 영화도 그랬다. 알버트 피니가 연기한 그 모습을 두고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의 이미지에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극찬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케네스 브레너가 연기하는 덩치 큰 포와로는 작은 기름얼룩조차 참지 못하는 결벽증 하나만 강조할 뿐 나머지는 원작과 판이하게 다르다. 케네스 브레너는 9개월간 콧수염 연구를 했다더니, 그냥 콧수염만 연구했나보다.

이런 외형의 변화는 캐릭터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포와로 뿐만 아니라 그 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영화이기에 소설 수준으로 조각난 퍼즐을 모으는 재미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단서를 찾아 범인을 찾는다는 추리영화 본연의 임무에는 소홀히 한 채 숫제 스타일만 집중탐구를 한다.

이러나저러나 <오리엔트 특급살인> 덕에 재조명 받게 된 탐정 포와로는 <나일강의 죽음>에서의 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이 작품 또한 1978년에 제작된 바가 있는데, 얼마나 잘 만들 것인지는 차치하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포와로를 또 봐야한다는 게 그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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