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경상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학술대회에 참가한 두 남자 교수가 수인사를 나누었다. 악수를 하면서 한 분이 “반갑습니다. 저는 생리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다른 한분은 “아 예. 저는 기생충입니다”라고 답했다. 의과대학 교수인 두 분은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를 말한 것이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생리하고 있는 남자와 자기 정체성을 밝히는 기생충의 만남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랫동안 기억나는 농담이다.

인문학을 전공한 한 교수가 미국에서 겪었던 얘기도 생각이 난다. 한 미국 친구가 신기한 것을 보여 주겠다며 의과대학 표본실로 데려가더니 “넌, 이것이 뭔지 아냐?”고 물었다. 들여다보니 사람에게 기생하는 기생충들의 표본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요건 회충, 이건 촌충” 하면서 이름을 말하니까, 미국 친구가 놀라 “너도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서 당황하였다고 한다. 한 40년쯤의 일이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좀 창피하였다고 한다.

기생충에 대한 에피소드는 정말 많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신기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50대 이상의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별일 아니었다. 채변 봉투를 학교에서 나눠주고, 기생충에 감염된 아이들에게 기생충 약을 나눠 주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애기가 배변을 하다 회충이 항문 끝에 매달린 것을 보고 놀라서 울었는데 할머니가 빼주었단 얘기는 너무 흔한 에피소드인 것이다. 구충제로 나눠준 ‘산토닌’이란 약은 마치 캐러멜처럼 생겼는데, 맛이 달았지만 기분 좋은 단맛은 아니었다. 그걸 먹고 나면 사방이 노래지고, 빙빙 돌기 때문에 일찌감치 잠을 청했지만, 다음날 화장실 가기가 두려워서 잠도 잘 오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기생충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을까. 기생충의 종류와 생김새, 그리고 감염 경로는 물론이고 중간 숙주가 무엇인지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고, 그걸 달달 외워서 중학교 입학시험에 대비하던 시절도 있었다. 기생충의 그림을 보고 이것이 갈고리촌충인지, 아니면 민머리 촌충인지를 가려 낼 정도가 되어야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는 우수 학생이었으니 그 때를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한 묘한 기분이 든다. 지금도 돼지고기는 바짝 구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맛 보다는 갈고리촌충의 중간 숙주가 돼지라고 배운 영향이 있을 것이다.

공동경비 구역을 통해 북한 병사가 귀순한 사건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상으로 공개된 그의 탈출 과정은 마치 영화와 같다. 네 군데나 총을 맞고 후송되어 수술을 받는 과정이 국내외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는데, 볼 때마다 극적이고 또 한편 만감이 교차한다. 수술 중에 기생충이 발견되었고, 기생충 때문에 잘 못 될 수도 있다는 기사를 보고 착잡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참으로 측은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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