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북한에 쿠데타가 발생했다. 급기야 (김정은이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는)북측1호가 남한으로 피신을 하게 되고, 북한에서는 핵미사일 발사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2차 한국전쟁은 이제 불을 보듯 뻔해진 상황, 이를 어떻게 막고 수습할 것인가.
<007 시리즈>와 같은 첩보액션영화에 반드시 무찔러야 할 악당이 등장해야만 한다. 그래서 소련부터 국제범죄조직수장, 이라크, 소말리아 해적 등 수많은 적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이제는 형체 없는 적과 싸우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첩보액션영화로만 따지자면 천혜의 조건을 가졌다. 남북으로 갈라져 대치중인, 잠시 전쟁을 멈춘 전 세계 유일한 휴전국이니까.
이처럼 분단이라는 상황은 영화 소재로서는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좌우 색깔론이 여전히 득세하는데다 감시와 사정의 칼날이 엄혹했던 지라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따라서 남측을 대변하는 캐릭터는 품이 넓어서 관대하고도 베풀 줄 알아야 하고, 혹여 북측 캐릭터는 조금이라도 미화하면 체제옹호라면서 빨갱이라고 욕한다. 그러다보니 기껏해야 잘생긴 배우가 북측 배우를 맡고 남측은 세파에 찌들어 때로는 회색분자로 여겨질 만큼 개성적인 인물이 나선다. 생각해보라. <의형제>나 <공조>가 딱 그 꼴이지 않은가. 사실 <강철비>의 캐릭터 구성도 비슷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강철비>는 남북 공조를 말하는 기존의 영화와는 목소리의 크기와 방향성에서 살짝 차이가 난다. 기존의 영화들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다는 설정과 다른 체제에서 성장한 만큼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만 반복하며, 결국은 두 캐릭터의 호흡을 강조하는 선에서 끝난다. 그러나 <강철비>는 정치적 상황을 그대로 직시하며 (그 해법이 옳든 그르든 간에) 방향성을 가지고 우직하게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대체적으로 신념을 가지고 목소리를 크게 내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는 법인데, 뉴스와 미·일·중 등 주변국들의 반응을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강철비>의 영화적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아니 공포감마저 든다. 이쯤 되면 스릴러 영화로서도 손색이 없다.
예전에 톰 크루즈는 <매그놀리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어야 했지만 너무 잘생겼다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잘생긴 게 마이너스가 될까? <강철비>에서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펼치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럴 법도 하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