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더 귀중했던 소통

지리산에는 대표적인 계곡이 여럿 있다. 우리나라 3대 계곡(한라산 탐라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 지리산 칠선계곡) 중의 하나인 칠선계곡을 비롯하여, 뱀사골, 달궁, 광대골, 백무동, 대원사, 중산리, 장당골, 거림, 대성리, 피아골, 화엄사, 천은사 등 손에 꼽기도 벅찰 정도다.

이들 계곡들이 나름의 특색과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그 중 가족 나들이로 최적인 곳은 뱀사골이 아닐까?

▲ 입구에서부터 시원함이 감싼다.
▲ 물빛인가, 하늘빛인가? 옥빛을 닮아서 옥류인가

이유인즉, 장장 9Km에 이르는 긴 거리에, 풍부한 수량, 때로는 웅장하게, 때로는 부드럽고 순하게 흐르는 물길이며, 수많은 전설과 사연을 간직한 소(沼)와 폭포, 그리고 경사도 평균 15도 이내의 넓고 평탄한 길, 잘 다듬어진 탐방로, 울창한 수목 등으로 인해서다.

특히 잠시도 시원한 물줄기의 계곡곁을 벗어나지 않는 탐방로는 시원하여 여름철 트레킹 코스로는 그만이다.

▲ 넓은 찻길을 피해 계곡가까이 도보전용 탐방로가 있다. 물길과 함께.
▲ 오밀조밀 탐방로를 걷는 재미는 피로도 싹~가시게 한다.
▲ 잘 정비된 길

뱀사골은 정확히 말하면,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반선 마을에서 지리산 주능선 구간 중 삼도봉과 토끼봉 사이의 잘룩한 능선고개(화개재)까지의 9.2Kmr까지의 구간을 말한다. 이 길은 예부터 경상도 화개장과 전라도 인월장을 오가는 보부상들의 장사길이었다.

이에 따른 사연도 곳곳에 어려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간장소'다. 경상도 화개장에서 소금을 진 보부상이 이 길을 가다, 소금을 계곡에 쏟았는데 그 이후 물빛이 소금을 푼 것처럼 깊고 푸른 빛을 띄고 있다는 것. 간장소의 경치는 정말 볼 만하다.

계곡 중간쯤에는 제법 큰 인가터가 있어. 인걸은 간 데 없이 적막감에 싸여 있지만 이곳에서 주린 배를 달래며 인생사 쓴 맛을 주저리던 옛사람들의 얘기가 들리는 듯하다. 이처럼 깊은 산속에도 삶이 있고, 사랑이 있고, 생로병사의 애환이 있음에랴.

▲ 간장소 아래
▲ 간장소-깨끗함과 부드러움이 더할나위 없다.
▲ 옛 민가터- 대략 예닐곱 집터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우리의 아픈 현대사가 또한 어려 있는 뱀사골이다. 이념의 극한 대립에서 패자가 되어 쫓기고 쫓겨 이 곳 지리산에 숨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던 빨치산, 그들은 뭣을 위해 이토록 치열한 삶을 살아야만 했을까?

매순간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그들은 조직을 추스르고, 한편으로 그들의 외침을 밖으로 토해내려고 애썼다. 그리고는 이름도 없이 스러져, 어머니 품같은 이 넓은 지리산 자락에 그들의 영혼을 맡겼다. 석실 속에서 깡마른 체구에 섬광처럼 눈빛을 번뜩이면서 한 장 한 장 등사기를 은밀히 밀었을 그들의 떨리는 손을 상상해 보았다.

▲ 빨치산 기관지- 생사를 다투는 순간에도 소통은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었을까?
▲ 석실(石室)-커다란 바위 두개가 겹쳐져 자연동굴을 형성했는데, 이 곳에서 빨치산들은 그들의 기관지를 제작했다.

뱀사골은 적어도 계곡을 8번 이상 넘나드는 길이다. 그 만큼 다리도 많고 따라서 시원한 물줄기를 끊임없이 보며 걷는 길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뱀사골 탐방로는 마지막 1.5Km(막차지점)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이 경사가 완만하여, 쉬엄쉬엄 걷다 보면 어느 새 하루해가 훌쩍 넘어가는 길이다.

깨끗한 암반위에 앉아 거울처럼 미끄러져 가는 물줄기를 보면서 가족끼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정이 돋지 않을까?

▲ 탁용소- 하늘로 승천하던 용이 계곡에 떨어져 흔적을 남겼는데, 마치 탁본 떠듯 용형상의 길이가 100M
▲ 탁용소
▲ 병소- 술을 담은 호리병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

▲ 병소
▲ 제승대-1300년 전 송림사 고승 정진스님이 불자들의 애환과 시름을 대신하여 제를 올리던 곳, 기도의 영험함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 제승대
▲ 뱀사골은 이런 아름다운 다리를 수없이 건넌다.
▲ 뱀사골은 이런 아름다운 다리를 수없이 건넌다.
▲ 다리
▲ 다리밑은 쉼터로도 안성맞춤이다.

이 곳 지명인 반선과 뱀사골에 얽힌 전설도 흥미를 돋운다.

1300여 년 전 현 지리산 북부사무소 자리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실상사보다 100년이 앞선 대찰이었다. 이 절에서는 매년 7월 백중날 스님 한 분을 뽑아 신선바위에서 기도드리게 하고 그러면 그 스님은 곧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

그러던 어느 해 이 행사를 기이하게 여긴 마음씨 고약한 고승이 독약이 묻은 옷을 스님에게 입혀 신선바위에서 기도드리게 했다. 그런데 그날 새벽, 괴성과 함께 기도드린 스님은 간 곳 없고 계곡 내 용소에는 용이 못 된 이무기가 죽어있었다.

그 후 이 계곡을 뱀이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골이라 하고 억울하게 죽은 스님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을 반선(半仙) 즉 절반의 신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깨끗한 암반위를 굴러가듯 옥류가 쉼없이 흐른다.
▲ 이렇게 가벼운 차림으로 쉬엄쉬엄 걷는 뱀사골.
▲ 이 가을 뱀사골 가족 나들이 강추!!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