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무려 700만 관객이 든 <1987>을 본 지금의 청춘들이 묻는다. “저때 정말 저랬어요?” 보이는 것보다 더 심했으며, 영화도 몰래 숨어서 봐야만 했다는 말에 도무지 믿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그때는 그랬다.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와 같은 ‘장산곶매’표 영화는 마치 첩보작전이라도 벌이듯 상영회를 했으며, 화질 구린 프로젝트 영상으로 보여주는 억눌린 시대의 엄혹함은 큰소리 한 번 내지 못하는 청춘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농촌계몽운동의 도구로서 문학처럼 장산곶매 영화가 그 역할을 했었다.

노동영화, 민중영화의 전형을 만들고 지금은 영화계의 거목들이 된 장산곶매 사람들, 그 중에서도 첨병에 섰던 홍기선 감독이 한창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유작이 된 <1급비밀>은 그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한 사회고발성 영화로, 정확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다뤄진 적 없었던 방산비리를 정면으로 파헤치고 있다. 지난 2009년 ‘2580’과 ‘PD수첩’이 폭로했던 내용을 영화로 재구성했으며, 아직까지 진행형으로 남아있는 실화가 바탕이다.

군대를 다녀오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 폐쇄성에 대해서는 치를 떨 만큼 잘 안다. 고인 물이 썩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이미 드러난 폐해만 부지기수다. 그 중에 방산비리는 단위 자체가 달라서 1억, 10억이 아니라 천억, 조 단위가 아닌가. 하지만 적폐척결은 꿈도 꾸지 못한다. 조직적인 은폐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설령 적발이 되더라도 책임전가 스킬, 꼬리 자르기 스킬, 위험회피 스킬에 정의감에 불탄 내부고발자만 배신자 낙인이 찍혀 유배당하고 만다.

무엇보다 안타깝고 슬픈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불의에 대항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상식이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소시민적 소망조차 꺾게 만든다. 그렇다고 구조적으로 왜곡된 사회시스템을 그대로 용인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영화는 곧 희망인 것이다.”라고 말하던 故 홍기선 감독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기를 소망했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을 말하겠다는 홍 감독의 신념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1급기밀>이다. 다만 메시지 전달에 충실하다보니 영화적 재미는 최근에 등장한 여타의 고발성 영화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그의 신념에 대해서만큼은 기립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홍기선 감독님, 부디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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