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부산행>으로 한국형 좀비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연상호 감독이 이번에는 초능력을 소재한 사회고발성 코미디 <염력>으로 돌아왔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입지를 굳힌 감독이 실사영화마저 성공하면서 후속타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고, 평단에서는 연일 연타석 홈런이 예상된다며 띄우기에 나섰다. 그런데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 사이에서는 내내 한숨소리가 들렸다. 평단과 관객의 괴리는 참 크다.

연상호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초현실적인 소재를 다룰 때 한국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개인의 이기심과 욕구를 근간으로 한 자본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꼬집은 <부산행>처럼, 단순히 소비만 되는 영화만 만들지 않겠다는 거다. <염력>에서도 그 마음을 그대로 투영했으니, 영험(?)한 약수 한 사발 마시고 염력이 생긴 소시민이 왜곡된 권력과 거대자본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다. 2009년에 일어난 비극 ‘용산참사’가 자연스럽게 겹친다. 초능력에 코미디에 세태비판까지, 이 모든 걸 가족의 화해와 부성애코드 하에서 한 덩어리로 묶어내었다. 그러나 단단하지 못한 매듭은 볼수록 얼기설기 어설퍼서 곧 풀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캐릭터와 상황별 은유와 상징이 비교적 명료하여 말하기 참 좋다. 에두르지 않고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직시하고 있어서 의미를 부여하기도 쉽다. 다 좋은데 한 가지 결정적인 것은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답게 만화적 상상력을 한껏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80년대 ‘우뢰매’까지 연상케 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뭐, 여기까지는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되새김할 수 있게 해서 좋다고 치자. 어깨가 무거워질 만큼 묵직한 이야기를 코미디로 풀어주려고 했으면 밀착감 있게 웃기려고 해야지 맥락과 상관없는 휘발성 슬랩스틱이라서 공허하기만 하다. 게다가 촌스럽고 구린 음악은 덤이다.

주식으로 몇 번 큰 성공을 거두고 나면 뭐든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치게 되고, 그러다가 한 방에 훅 간다고 한다. 좀비영화라는 서브컬처 장르로 천만관객을 동원한 뒤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노리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생겼다. 예술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는 있어도 상업영화로 예술을 해선 안 된다. 상업영화의 본령은 재미에 있으며, 로맨틱코미디의 여왕 김은숙 작가의 말처럼 남의 돈으로 예술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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