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계약 숨긴 채 무자격 분양·임대.. 31세대 12억여원 피해

사천의 한 아파트 입주민들이 분양사기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경남 사천의 한 아파트 세입자들이 전세금과 분양금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게 생겼다. 아파트 소유주가 불법으로 임대 또는 분양한 뒤 파산할 위기에 몰려 있는 사이, 채권자들이 아파트 매각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썽이 일고 있는 아파트는 사천시 정동면에 있는 A아파트. 이 아파트는 당초 한 기업의 사원아파트로 지어졌으나 2007년 초에 B업체에 팔렸다. 이 아파트의 세대 수는 314세대다.

A아파트의 새 주인이 된 B업체는 모든 세대를 임대에서 분양으로 전환할 생각이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B업체는 아파트를 담보로 한 은행으로부터 182억 원의 대출을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산신탁회사 C와 부동산담보신탁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이 신탁계약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가 이번 ‘사기 분양/임대’ 말썽의 원인이 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탁자(=B)는 수탁자(=C)의 사전 승낙이 없는 경우에는 신탁부동산에 대하여 임대차 등 권리의 설정 또는 그 현상을 변경하는 등의 방법으로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제한하거나 가치를 저감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또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위탁자가 임의로 체결한 임대차계약은 이로써 수탁자에게 그 효력을 주장하지 못하며, 그로 인하여 수탁자에게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위탁자가 배상하여야 한다.”

결국 이 계약에 따르면 B는 C의 사전 동의 없이는 아파트의 임대나 분양을 추진할 수 없는 셈이다.

사기 분양을 한 업체가 부도를 맞으면서 피해입주민뿐 아니라 전체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B가 입주를 희망하는 소비자를 상대로 전세 또는 분양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입주자들은 B와 C사이에 이런 신탁계약이 체결돼 있음을 까마득히 몰랐다는 점이다.

신탁계약이 체결된 2007년6월11일 이후, B가 C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임대한 것은 20세대. 그 금액만 9억2900만원이다. 또 분양계약을 맺은 것도 11세대에 그 금액이 3억5000만원에 달한다.

일종의 사기분양·임대 피해자들은 많게는 8700만원에서 적게는 900만원까지 모두 12억7900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2년 가까이 이어지던 B의 사기행각은 올해 초 서서히 드러났다. B가 내던 미분양 141세대 관리비가 연체되기 시작하고, 일부 세입자들의 전세권 설정 요구가 차일피일 미뤄지던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일부 피해자들이 진상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그 제서야 B와 C사이에 맺은 신탁계약 전문을 확인했고, 이로써 자신들의 계약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B의 사기행각으로 일부 계약 입주민들뿐 아니라 아파트 입주민 전체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 아파트 관리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아파트가 가입해 있는 보증보험으로 하자보수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올해 2월로 끝났다. 이에 앞서 입주자대표회의는 공용 하자보증금 2000여 만원을 보증회사에 청구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하자보증금을 받기 위해선 소유주인 B사의 보상심사서류가 필요한데, B사는 사실상 공중분해 된 것이나 다름없어 보증금 받기가 막막한 상황이다. 관련 보상지원 기관에서는 18일까지 모든 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보험심사를 종결하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에서 보낸 진정서와 공문이 여러 첩이다.
이밖에 지금의 추세라면 개별 입주자들도 하자보수 혜택을 더 받기는 어려워질 전망이다.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분양에 따른 공실 세대 관리비를 B가 내지 않음으로써 그 누적 금액이 수 천 만원에 이른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나머지 입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 밖에 눈에 뵈지 않는 피해도 상당하다는 게 입주민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왜 처음부터 문제가 있음을 깨닫지 못했을까.

박금주 피해입주민비상대책위원장
아파트 상가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박아무개씨는 집과 상가 양쪽 전세금을 모두 날릴 위기를 맞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대부분 피해자들이 처음부터 전세권 설정을 해달라고 했으나 B업체에서 “신탁회사와 계약이 돼 있기 때문에 전세권 설정이 굳이 필요 없다”고 설명해 그런가보다 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계약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뒤에는 B업체 대표이사와 본부장 그리고 실무를 맡았던 이사1명을 업무상 횡령과 배임 등으로 고소했다.

피해자들은 그들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긴 했어도 전세금이나 분양금을 돌려받을 길이 난감했기에 B업체 주장대로 미분양세대를 한꺼번에 사들일 제3의 업체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흐른 시간이 한 달 남짓. 결국 미분양 아파트를 인수할 제3의 업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 B사 대표는 다른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고 그 밖의 피고소인들도 잠적해 버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는 더욱 심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8월에 이르러 1순위 우선수익자인  모 은행이 가졌던 B사 채권이 부실채권으로 분류돼 한국자산관리공사로 넘어갔다. 그리고 자산관리공사는 이 채권을 한꺼번에 매각하거나 세대별로 나눠 공개매각 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채권이 매각되면 지금 입주해 있는 비정상 입주자 31세대는 거리로 나앉게 된다.

또 현재 빈집 상태인 114세대와 일부 비정상세대에는 업체 D가 유치권을 행사 중이다. 유치권이란 타인의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에, 그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유치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여기서 D는 2007년 중반부터 이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를 맡은 업체다. 지금까지 40억원의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파트피해입주민들이 내건 펼침막이 처절하다.
상황을 종합하면 피해입주민들은 분양/임대 사기를 당했고, 여러 채권자들 틈에서 자신들의 재산권을 주장하기가 벅찬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주민들은 신탁회사 C에 책임을 물을 생각이다. 올해 1월에 한 피해주민이 C사에 전세보증금과 전세계약권한에 관해 ‘내용증명’ 방식으로 물었으나 두 달이 지난 뒤에야 회신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해주민들은 C사가 B사의 사기 분양/임대 행각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그에 따른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런 주민들의 주장에 C사는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입장 밝히기를 꺼렸다.

한편 일각에서는 “신탁이란 개념을 모르면 이와 유사한 사례가 또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근저당설정’ 정도는 이해하지만 ‘신탁’에 관한 이해도가 일반인들에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 건물 등기부등본에 신탁계약 내용이 함께 나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따라서 관련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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