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폐단1>에서 이어짐.

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하나는 등단 제도입니다. 우리 나라는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신춘문예, 추천제, 문예지 신인상 공모 등 다양한 과정 중 하나를 거쳐야 합니다.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지요. 쓴다고 해서 모든 게 가치 있는 글은 아니지만, 문단의 기득권을 지닌 일부 사람들이 판단을 독식하고 결정을 한다면 이는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지요. 그러한 판단을 누가 어떤 근거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느냐 하는 게 중요합니다. 유럽의 나라들은 우리와 달리 등단 제도 없이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가를 독자의 몫으로 둡니다. 독자의 참여 폭이 그만큼 넓고 활발하다는 의미겠지요.

  빽-빽은 영어 백그라운드background(배경)에서 앞부분만 떼어 된소리로 나타낸 말로 영향력 있는 배경이나 후원의 뜻으로 쓰는 비표준 비속어- 얘기를 조금 덧붙일게요. 인人빽으로 아니면 금金(돈)빽으로 그도 아니면 권權빽으로 등단의 그물눈을 뚫는다면 여기에서 옳은 문학판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등단과 관련해 일부 심사위원들이 이 것 저 것을 두루 맡아 하는 영향력의 쏠림 현상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빽의 파급 효과가 커진다면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꼴이 되지 않을까요. 문예창작기금 수혜나 우수 문학 도서 선정, 일부 거대한 출판사들의 편협적인 도서 출판 등도 좀 더 명확한 객관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인물의 사상과 형상의 동일시 오류입니다. 글을 쓰면 여기에는 작가의 영혼이 담겨 있다고 독자는 알고 이를 믿습니다. 당연한 이치겠지요. 그럼에도 일부 글쓴이는 글의 오묘하고 감동적인 내용과는 다른 언행을 일삼습니다. 이러한 그들 중에는 문단에서 추앙 받는 걸출한 인물이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절대 군주인 경우도 있습니다. 어이없긴 하지만 간혹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뛰는 격으로, 작가라는 이름을 앞세워 비뚤어진 언행을 하는 젊은 친구가 있어 염려와 실소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이들의 아름답지 못하고 부도덕한 존재 가치를 과연 작품 구상이 좋고 가슴 뭉클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무조건 맹종하고 수용해야 하는 것인가요.

  글 솜씨 뛰어나고 책도 여러 권을 내어 이미 유명세를 탄 문인을 바라보는 후배나 새내기 문인의 시각 또한 일반 독자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판단합니다. 작품에 대한 환호와 기대감이 작가의 인품에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 없습니다. 작품과 인성이 꼭 일치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필연성은 없지만,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때 얻는 일반인들 또는 젊거나 새내기 문인의 좌절감과 충격은 매우 큽니다. 지금도 작가의 친일, 친독재 기행奇行으로 인해 그 작가의 정신을 기리는 문학상 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거나, 이미 제정한 문학상의 수상을 거부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안타깝고 가슴 답답한 현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 글판에는 참으로 영혼을 위로하고 삶의 비전을 제시해 주는 멋진 필체로 감동을 주는 존경스럽고 본받고 싶은 훌륭한 문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진정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문학판을 새롭게 또 새롭게 닦아야 합니다. 이러한 폐단들을 유명세와 문학 권력을 지녔다는 말로 미화하고 포장하고 묵인하고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안일함으로 그저 방치해 둬야 할까요. 방관은 무죄가 될 수 없으며, 잘못한 점은 언젠가 단죄해야 할 과오임을 깊이 각성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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