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흥부전에 보면 흥부 매품 파는 대목이 나온다. 가족을 부양할 돈을 벌기 위해 돈 없는 가장(家長)인 흥부가 남이 맞아야 할 매를 대신 맞는 일이다. 소설에서는 이 매품도 원래 매를 맞아야 할 사람이 사면되는 바람에 팔지 못하고 만다. 곤장 맞아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일이건만 흥부는 모처럼 돈이 생길 기회를 놓친 것이 아까울 뿐이다. 이 매품 파는 일은 다른 기록에도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들어 공공연한 일이 되었던 모양이다. 특히 양반은 곤장을 맞는 대신 벌금을 내는 속전(贖錢)으로 대신하거나 집안의 노비로 하여금 대신 맞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단연코 이 일은 옳지 못하다. 돈 있는 자는 잘못해도 곤장 맞을 일이 없으니 돈 있는 자와 돈 없는 자를 명확히 편 갈라 차별하고, 잘못은 양반이 했는데도 그 불똥은 노비가 뒤집어쓰는 꼴이다. 다행히 오늘날은 이런 맹랑한 일은 사라졌지만 요즘 한참 질타를 받고 있는 ‘갑질’은 여전하다. 돈이든 권력이든 가진 자의 횡포가 못 가져 한이 맺힌 약자를 거듭 괴롭히는 것이다.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1980년대 들면서 수상한 플래카드가 부쩍 골목길 어귀에 걸리곤 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 이전에도 그런 전례가 있었지 싶지만, 그 내용은 ‘아무개 의원님 감사합니다’라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감사의 내용은 동네길 포장에서부터 무슨 건물이나 시설을 짓게 해 주었다는 등이었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국회의원이 제 돈 들여 길 닦고 건물 지은 게 아닐 뿐만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끌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 적지 않은 세비를 받고 수많은 특혜를 누리는 국회의원에게 또 감사하다는 아부까지 하는 것이다. 일하라고 뽑힌 사람에게 일하라고 뽑아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 그 유명한 ‘갑질’은 누가 해야 하는가. 이런 일을 두고 쓸개가 빠졌다고 하는 것인가.

요즘 들어 적폐 청산이 관심꺼리다. 잘못된 관행과 인습을 없애자는 일이다. 어떤 시대에나 우선해서 하고자 한 일이었다. 적폐 청산의 일등은 일등 제일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등도 꼴찌도 일등과 같은 사람대접을 해야 마땅하다는 데 있다. 따지고 보면 일등은 이등과 그 다음과 다음의 꼴찌가 있기에 존재한다. 당연히 일등은 이등과 꼴찌에게 빚을 지고 있다.

대략 이천오백 년쯤 전에 중국의 유학자들은 왕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고 하늘의 뜻은 백성의 뜻에 따라 정해진다고 하였다. 백성이 떠나가면 왕 노릇은 누구와 더불어 할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활약하신 동서양 여러 성인(聖人)들의 말씀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을 듯하다. 권력은 백성들이 잠시 맡긴 것이다. 부(富)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휘둘러 제 잘난 행세를 한다면 살아서는 팔만 아플 뿐이고 죽어서는 냄새나는 이름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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