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병주 발행인

비보가 날아들었다. 미국 공군이 차기 고등훈련기 공급 사업자로 미국 보잉과 스웨덴 사브를 택한 것이다. 미국 록히드마틴과 합작으로 T-50을 개량한 T-50A를 공급하려 했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소식이 알려진 9월 28일 이후 지금껏 KAI는 큰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마침 10월 1일로 창사기념일까지 맞았지만 구성원들은 하나 같이 말을 아낀 채 자세를 낮췄다. KAI 협력사들도 마치 제 일인 양 울상이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미 고등훈련기 수주 경쟁 탈락을 KAI의 뼈아픈 악재로 여긴 투자자들이 KAI 주식을 앞다퉈 내놨다. 사업자 선정 발표 전 며칠 간 꾸준히 오르던 주가는 하루 만에 30% 가까이 곤두박질쳤다.

사천시민들도 충격에 빠졌다. KAI의 탈락을 쉬이 예상하지 못한 탓이다. 연일 KAI를 이야깃감으로 올려놓고 나름의 분석과 해석을 내놓는다. 부동산업계는 더 절망적 반응이다. 그간 ‘다른 건 몰라도 미 고등훈련기 사업만 성사되면 된다’고 말하던,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눈치가 강하게 엿보였던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이다. 그들의 한숨에 정말 땅이 꺼지는가 싶을 정도다.

KAI의 이번 탈락은 사천의 항공산업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그것에도 심각한 차질을 줄만큼 큰일이란 게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니 KAI 구성원은 물론 사천 지역사회와 주식시장까지 하나같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그리 놀랍지 않다. 다만 결과를 되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충격에 빠져만 있어선 안 되겠다. 사천을 대표하는 항공산업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도록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마침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사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10월 1일 시민대회를 열었다. “항공산업 위기 극복에 힘을 모으자는 뜻”이었다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신규 민간항공기 구조물 생산설비를 고성군에 갖추려 한다는 소식에, 불과 열흘 전까지 규탄 궐기대회를 갖겠다며 분노하던 해당 단체들이 전향적 모습을 보인 셈이다.
하지만 보수적 단체와 참여자가 많았던 탓일까. 아니면 이번 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보려는 일부 정치집단의 욕심의 발로였을까. KAI의 수주 실패 책임을 지나치게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묻는 목소리가 컸다. 또 김조원 사장과 KAI를 향한 비판과 비난도 스스럼없었다.

물론 따져보면 그들에게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KAI의 이번 미 고등훈련기 수주 실패는 경쟁사의 지나친 저가전략 때문이었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무엇보다 이번 수주에 있어 선택권을 쥔 쪽은 보잉과 록히드마틴이었다. 그래서 ‘미국 내 방위산업부문에서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실패를 맛본 보잉의 경우 절박함이 그만큼 컸고, 록히드마틴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따라서 ‘만약 보잉이 제시한 가격으로 고등훈련기 수주를 따냈다면, KAI로선 가까운 미래에 더 큰 낭패를 맛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란 해석도 그럴듯하다. KAI 협력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누구의 탓을 하는 일은 그만 두자. 자칫 ‘나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려는 술수’쯤으로 이해되기 십상이다. 위기의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를 설득하고, 국회를 설득하고, 경남도를 설득해 무엇을 가져올 것인지 머리를 맞대자.

기왕이면 도로 곳곳에 나붙은, ‘KAI 고성’ 운운하는 펼침막도 걷어내자. 지금은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 때다. 어느 식당이 내건 또 다른 펼침막처럼. “그래도 대한민국의 날개는 KAI, 힘내라 KAI 날아라 KAI” “갠찬타카이 힘내라카이 날아라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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