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선생님 월급이 저보다 적네요?”

스무 해도 더된 일이다. 농협 창구에서 일하던 여직원이 마흔을 훌쩍 넘긴 선배 교사의 월급 통장을 보고 건네던 말이다. 그랬다. 그 시절엔 교사보다 대부분의 노동자 월급이 더 많았다.

IMF가 들어와 서민들의 삶을 난장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형편없이 깎였다.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대책도 없이 쫓겨나거나 비정규직이 되어야 했다. 재벌 대기업은 중소기업에게 가야할 수익을 빨아서 생산비용을 절감했다. 

그렇게 20년이 갔다. 은행의 젊은 여직원보다 적던 교사의 임금은 전체 노동자 임금의 상위 20% 안에 들게 되었다. 교사인 나는 졸지에 노동 귀족이 되어버렸다.

이 말을 하면, 내 주변의 교사들은 “우리가 노동귀족이라니,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며 펄쩍 뛴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에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아니 그마저도 없이 하루하루 날품을 팔아야 할 대다수 노동자와 비교하여, 과연 그렇지 않다 떳떳이 말할 수 있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물론 ‘귀족 노동자’란 어휘 자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노동자가 아닌 기업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협조하는 대가로 풍요로운 삶 누리는 노조간부를 비판하여 만들어진 용어다. 10년 전 내 동료들이 손사래 치며 그렇지 않다 항변하던 까닭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신문에서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미국‧일본‧ 프랑스 대기업 노동자보다 많이 받는다는 기사를 봤다. 그 나라의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대기업 노동자 임금의 최소 60% 이상은 받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5~9명의 사업장 노동자는 대기업 노동자 임금의 45%, 1~5명의 사업장 노동자는 32%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고 있단다.

‘광주형 일자리’ 문제로 민주노총과 정부가 각을 세우고 있다. 민주노총 사업장에 고용세습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지 못하여 이들에 대해 감히 내가 뭐라 말하기는 그렇다.

그러나 교사인 내 월급이 80%의 노동자보다 높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제대로라면 최소한 절반 이상의 노동자가 나보다 더 많이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말을 내가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배부른 노동 귀족의 하나마나한 ‘×소리’다. 

한국노총, 민주노총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나처럼 말뿐이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이 줄곧 외쳐왔던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정규직 철폐’를 꼭 이뤄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당위론조차 당장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민주노총이 노동법 개악이라 반대하는 ‘광주형 일자리’가 하루하루 날품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당장 목구멍의 포도청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 급한데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이겠는가 말이다. 

‘좀 더 참고 기다려 같이 배불리 먹자’는 말은 이미 배불리 먹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내가 진짜 노동 귀족이 되어 이 문제를 자본가의 눈으로 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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