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여름 휴가시즌에 블록버스터 영화가 한바탕 휩쓸고 나면, 찬바람이 불 즈음 기다렸다는 듯 마음을 적시는 영화가 등장한다. 이맘때 출몰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작품성을 강조하는데 쓸데없이 헛심만 쓰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물론 알짜배기도 기다리고 있으니 잘 고르기만 하면 되겠으나, 아쉽게도 상영관이 적거나 없어서 꾸물대다가는 자칫 놓칠 수 있다. 나중에 VOD로 보면 된다지만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TV모니터로 보는 맛이 어디 같겠나. 따라서 정말 좋은 영화는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전 후다닥 뛰어가서 봐야만 한다. <그린북>이 그런 영화다.

1960년대 미국은 그야말로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을 때이다. 그 중에서도 남부지방은 끝판왕이었다. 마시는 물조차도 흑백을 구분해놓던 시절, 흑인은 백인에게 버스좌석을 비롯해 거의 모든 것을 양보해야만 했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그냥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을 검색해보라. 바로 이런 곳으로 흑인 피아니스트가 8주간 투어를 떠나야 한다. 그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극찬할 정도의 천재다. 우아하고 섬세한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흑인이기에 남부 투어의 앞날은 캄캄하다. 그래서 보디가드 겸 운전사를 모집하고 보니 모든 일을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단순, 무식한 작자가 나섰다. 이쯤 되면 작위성이 지나쳐 마치 억지 설정 같은데, 세상에 이게 실화란다.

<그린북>의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잔잔한 미소다. 인종차별, 신분차별, 경제차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망라돼 있는 시대라서 다소 부담스러운 전개가 예상되지만, 그런 편견은 벗어던지라는 듯 유머와 위트로 포장해 놨다. 그렇다. 차별은 편견에서 온다. 그래서 편견 없이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삶 속에서 일상에서 편견 없이 차별하지 않는 태도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대체로 이런 ‘버디무비’ ‘로드무비’는 해피엔딩이든 새드앤딩이든 결말은 성장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싸우고 화해하고 마침내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면서 아름답게 끝나거나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거나. 결말이 다를지라도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좋은 평가를 얻기가 쉽지 않은데, <그린북>은 2018 골든글로브에서 5개 부문 노미네이트에 3개 부문 수상이란 쾌거를 거뒀다. 보편타당한 소재와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 그리고 완성도 높은 만듦새를 지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이제 아카데미까지 무리 없이 질주 할 일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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