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시인.

하드보일드 문체는 현실적이면서도 자극적인 재미를 주고, 또한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과 사회와 범죄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보냄으로써 과거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독창성을 표출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과감히 배제하고 관찰자로서 냉정한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며 추리보다는 행동에 무게를 두어 사건을 전개함으로써 독자의 반향이 컸습니다.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풍의 작품으로는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큰 강 Big Two-Hearted River》, 《흰 코끼리를 닮은 언덕 Hills Like White Elephants》, 《살인자들 The Killers》,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 of Kilimanjaro》 등 여러 편이 있습니다.
작품 여행을 짧게 해 보겠습니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큰 강》은 상징성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강은 쉼 없이 흐릅니다. 강의 유동성은 ‘삶의 몸부림’을 뜻합니다. 주인공 닉은 강과 부대끼며 상실감이 주는 상처를 치유합니다. 송어 낚시를 하며 휴식과 여유를 찾습니다. 한 마디의 대화 없이 행동 서술로 인물의 심리를 드러냅니다.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려는 노력이겠지요.

《흰 코끼리를 닮은 언덕》은 분량이 아주 짧습니다. 손바닥소설掌篇小說, 꽁뜨 conte라 하겠지요. 남녀가 낙태 문제를 두고 언쟁을 벌입니다.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철저히 대화 중심으로 기술했습니다. 그 속에 주제가 스며 있습니다. 자칫 의미 찾기가 강박관념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읽는 이의 심리적 갈등이 뜻밖에 작품 풀이의 열쇠가 된다면 이는 행운이겠지요.

《살인자들》은 짧은 말을 되풀이해 썼습니다.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습니다. 죽이려는 자들의 난해한 언행이 소설의 7할을 지배합니다. 죽음 앞에 아무 대책 없는 남자가 있습니다. 무기력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도움조차 거부합니다. 독자의 인내를 시험하려는 의도는 아닐까요. 끈끈한 끈질김으로 반복해 읽으면서 작가의 노림수를 움켜쥐어야 합니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등장인물 해리는 아프리카 사파리 사냥 중 병을 얻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찾아옵니다. 자기의 재능을 망친 우둔했던 지난날을 반성합니다. 술, 돈, 여자, 노름, 나태와 안일, 교만과 편견, 속물근성이 그것들입니다. 여기에 얽매여 작가 정신을 저버린 것을 후회합니다. 죽음이라는 육중한 주제를 맛깔나는 솜씨로 처리하여 깊은 여운을 남기지요.

하드보일드 문체를 담은 네 편의 작품을 간략히 음미했는데 맛이 제대로 담겼는지요.  
헤밍웨이는 그가 쓴 소설의 대부분을 통해 죽음이란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권총 자살 그리고 그의 엽총 자살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삶 속에서 부딪치는 죽음과 기억 저편의 암울한 죽음을 함께 아우르며 살아왔기에, 그의 삶이 더욱 우울하고 지독한 신경쇠약 증세에 시달렸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수렴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망각하며 사는 게, 자신만의 삶을 온전하게 유지하거나 혹은 굳건히 지키는 방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현실 문제를 회피하고 부정한다 해서 삶의 질이나 방향성이 나아지고 또 바뀐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삶을 엮으면서 갖은 정신적 질환에 부대낀다면 이는 삶이 주는 긍정성을 배제한 또 다른 폐해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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