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떠났던 맏이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외국에서 사고소식을 접하고 뒤늦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아빠, 혼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던 엄마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일찌감치 철이 들어버린 아이. 이들 가족에게 찾아온 사람들이 맏이의 생일을 열자고 한다.

사람은 다 비슷한 법이라 아프면 소리치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다. 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영화는 고유한 지문과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이 감정의 물결은 잔잔한 파도로 다가서기도 하지만 거대한 풍랑이 되어 뒤덮기도 한다. 그래서 관객은 자신이 소화시킬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거리를 재고 조심스럽게 다가서기 마련이다.

이 영화 <생일>은 전 국민의 집단 트라우마가 된 ‘세월호’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고통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라 다시 응시하기가 두렵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볼 자격이 있을까, 죄책감과 슬픔이 뒤섞인 끝을 알 수 없는 묵직한 감정을 <생일>은 일상으로 표현하고 정돈하면서 방점 하나를 찍는다. 세상에는 잊지 말아야 할 슬픔도 있는 법이다, 라고. 그러나 그 어조는 결코 격하지 않다. 어린 아기가 잠에서 깨어 울까봐 발걸음 소리마저 낮춘 엄마의 발걸음처럼 말이다.

차마 입 밖으로 내어 말하기 어려운 것은, 누구나 한 가지 쯤은 가지고 있는 상처나 고통에 관한 기억이다. 그래서 대체로 상처를 안으로 감추고, 꾹꾹 눌러서 숨기고, 혹시라도 떠오를까봐 외면하면서 의연한 척 살아간다. 그러나 집단 트라우마는 다르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음에도 피해 당사자는 시뻘건 상처를 강제로 노출당하고, 때로는 정치적 프레임을 덧씌워 상처 입은 사람들을 또 다시 절망의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생일>은 조심스럽고도 진정성 있는 자세로 다가서야만 하고 또 그렇게 한다. 객관적으로 그려내려는 시선이 덤덤하고도 담백해서 오히려 눈물이 나려하고, 억지로 눈물을 참으니 울음소리가 비집고 새어나오려 한다.

‘세월호’가 상식을 가진 한국인들의 가슴에 남긴 상처는 너무 아프고 깊어서 이것을 소재화 한다는 것은 너무나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생일>은 묵묵히 어깨에 얹힌 죄의식을 감내하며 담담하게 남은 자의 삶을 보여준다. 영화적 성취가 목적이 아니라 마치 통과의례처럼 우리 잊지 말자, 반복하지 말자를 꾹꾹 눌러 웅변한다. 이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감정의 울혈을 푸는 방법은 반성과 성찰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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