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팝나무 꽃.

한낮의 햇살이 제법 따갑게 내리쬐는 요즘, 산길 가장자리나 논둑, 마을의 둔덕에 피어나는 조팝나무의 흰 꽃은 백설기보다 더 하얗다.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면 흡사 나무 위에 수북이 흰눈이 쌓인 듯도 하다. 농부들은 산과 들에 조팝나무가 하얗게 피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곤 했다고 한다. 

조팝나무는 장미과의 키작은 나무이다. 짧은 꽃자루로 꽃이 가지 끝에 촘촘히 붙어서 핀다. 열매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크기로 6월이면 맺힌다. 자잘한 흰색 꽃이 마치 좁쌀을 튀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조밥나무’라고 부르다가 이게 강하게 발음되어 조팝나무가 되었다. 사실 좁쌀은 하얀색이 아니라 노란색이다. 하지만 좁쌀처럼 작은 꽃이 잔뜩 핀 모양을 비유해서 조팝나무라 이름 붙였다. 하여튼 배고픈 시절에 수북이 핀 꽃을 보고 밥을 떠올리며 이름 붙이다 보니 유독 우리나라 나무이름에 음식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곧 이어 이팝나무가 뒤를 따를 것이다.  

조선 후기 고전소설 <토끼전>에 조팝나무가 등장한다. 토끼의 꼬임에 빠져 육지에 올라온 별주부가 처음 육지 경치를 둘러보고 한마디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소상강 기러기는 가노라고 하직하고, 강남서 나오는 제비는 왔노라고 현신(現身)하고, 조팝나무에 비쭉새 울고, 함박꽃에 뒤웅벌이오.” 멍청이 별주부가 처음 육지에 올라왔을 때가 봄이었고,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꽃이 조팝나무였음이 분명하다.

요즘이야 조팝나무의 꽃을 보고 하얀 꽃을 감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예부터 약용으로 더 많이 이용되었다. <동의보감>에는 조팝나무 뿌리를 상산(常山), 혹은 촉칠(蜀漆)이라 하여 “여러 가지 학질을 낫게 하고 가래침을 잘 뱉게 하며 열이 오르내리는 것을 낫게 한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외국에서는 조팝나무에서 대표적인 해열제인 아스피린의 원료가 되는 성분이 발견되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북미의 인디언들도 이 조팝나무류를 민간 치료제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

밥을 떠올리며 이름 지은 조팝나무에 전설이 없으면 서운하지 않겠는가? 옛날 어느 마을에 수선이라는 효성이 지극한 소녀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나 아버지는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수선은 직접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수선은 갖은 고생을 다해 아버지의 소식을 들었지만 얼마 전에 감옥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선은 큰 슬픔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수선은 죽은 아버지 무덤 옆에 있는 작은 나무 한그루를 캐어 와서 정성스레 키웠는데 이듬해 봄 하얗고 탐스러운 꽃을 피웠다. 이 꽃을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수선국(조팝나무)이라 불렀다.

조팝나무의 종류로는 꽃차례의 모양이 둥근 공처럼 생긴 공조팝나무, 진분홍색 꽃이 달리는 꼬리조팝, 잎이 둥근 산조팝, 꽃이 무성한 참조팝 등 여럿이다. 조팝나무는 봄날의 우리 산천을 하얀 꽃으로 뒤덮어 한층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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