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감정 하나하나를 계산해서 조밀하고 세심하게 직조한 공포는 극대화된 사운드 이펙트를 업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피 칠갑을 한 그 어떤 악령보다도 무섭다. 그래서 <컨저링>은 무서운 장면 없이도 너무 무서웠다. 그 미덕을 계승하고 싶었던지 <요로나의 저주> 헤드카피가 ‘이번에도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인데 이 카피는 딱 <애나벨>시리즈 까지가 유효기간인 듯하다. <요로나의 저주>는 유감스럽지만 무서운 장면도 없고 무섭지도 않다. 

공포를 쌓아가는 과정은 섬세해야 한다. <쏘우>로 발군의 호러 유니버스를 열었던 제임스 완 감독은 공포를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 지 누구보다 잘 안다. 게다가 용인술도 뛰어나서 <애나벨: 인형의 주인>을 연출한 데이비드 F. 샌드버그의 발탁으로 호러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도 이미 입증한 바 있으니, 신예 마이클 차베즈 감독에 대한 기대도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멕시코 신화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는 이슈도 있어서 기존의 컨저링 유니버스 영화들과는 다른 신선한 호러물 한 편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는 더욱 커진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맥락 없는 억지 공포심 유발에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컨저링 유니버스의 세계관이 뜬금없이 끼어들어 분탕질을 친다. 가슴 답답한 캐릭터들의 ‘병크’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날 지경이다. 이럴 것 같으면 그냥 무서운 장면이라도 몇 개 넣지.

<애나벨>과 <컨저링>을 떠올리게 하는 플롯과 장치는 제임스 완 감독과 그의 전작들에 대한 오마주와 클리셰라고 하기엔 기시감이 너무 짙다. 심지어 너무 빤해서 호러로서의 장르적 쾌감마저 떨어뜨린다. 그나마 빗소리나 삐걱거리는 소리 등 공포를 견인하는 사운드 연출은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매력이라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차라리 사운드에 좀 더 집중했다면 차베즈만의 색깔이 조금은 더 드러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차베즈 감독의 차기작은 <컨저링 3>이라고 하는데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더 커졌다. 컨저링 유니버스 팬들의 걱정을 불식시키길 바라는 바, 방법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을 수 있다. 제임스 완이 차베즈를 발탁한 이유는 공포에 근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스토리를 풍성하게 하는 감수성이었다고 하니 부디 둘 중 하나라도 차베즈 그 만의 색깔을 입고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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