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나의 특별한 형제' 포스터.

5월의 극장가는 마블발 대형 토네이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휩쓸려버렸다. 이런 상황에 개봉하려면 웬만한 강심장으로는 어려울 텐데, 북풍한설 속에 힘겹게 고개를 내미려 하는 새싹이 있으니 ‘장애’와 ‘형제’를 앞세운 <나의 특별한 형제>다. 초토화된 극장가에 소구력도 그리 대단치 않은 소재라 아무래도 첫인상은 ‘불안’일 수밖에 없다. 투자자도 아니고 감독이나 배우의 팬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체장애인 세하와 지적장애인 동구는 ‘태어났으면 끝까지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을 가진 ‘책임의 집’에 산다.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알뜰히 챙기고 살뜰히 채워주는 혈육보다 그 누구보다 끈끈한 사이다. 비익조처럼 어느 한 쪽이 없으면 세상살이가 고달픈 장애를 가졌고, 이들이 어쩔 수 없이 갈라져야 할 위기에서 난관극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내용의 전부다. 결말까지 보이는 이 빤한 영화가 마음을 적시니 이것 참 묘하다.

깃털만큼 가벼운 솜도 차곡차곡 쌓아올리면 휘청거릴 만큼 무거운 법이다. 감정도 마찬가지여서 가볍고 유쾌하고 때로는 슬프게 켜켜이 쌓아 올려 가랑비에 옷 젖듯 묵직하게 하더니, 영화가 마칠 때쯤에는 그리웠던 훈훈한 감정에 푹 빠지게 한다. 그동안 몰입하거나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보던 영화들에 익숙해져있었던 탓에 따뜻하고 유쾌한 휴먼드라마의 담백함이 오히려 신선하다고 할까.

<방가? 방가!>의 육상효 감독은 빤한 소재를 빤하지 않게 풀어낼 줄 안다.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도 불편한 부분을 모호하게 포장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따뜻한 유머로 응시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잘 못 살 거라는 생각 또한 편견임을 보기 좋게 부숴버린다.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선입견, 차별 등을 도드라지게 부각시키지 않고도 그 부당함이나 불온함을 웅변한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유머코드를 잃지 않는다. 당연히 “이 영화 생각보다 괜찮다”는 소리가 붙을 수밖에.

다들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사실 중에 하나가 ‘장애는 불편할 수는 있어도 결코 불순하거나 불쌍하지 않다.’이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선입견과 편견을 바탕으로 배척과 차별이 이루어지고 때로는 값싼 동정을 시혜 베풀듯 던진다. 그러나 이 영화의 실화모델이 그러했듯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결코 기울어진 잣대를 들이댈 이유도 당위성도 없다.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이라고 여겨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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