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시인.

헤밍웨이가 키웨스트를 자신의 고향이라 말하며 살았던 집을 찾았습니다. 그의 두 번째 부인 폴린 파이퍼가 구입하여 1928년부터 1940년까지 지냈던 공간입니다. 굵은 햇살 아래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담장 너머 집안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습니다. 입장료도 어른이 14불이니 싼 값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토록 찾는 이가 많다니, 그가 지닌 매력과 그의 문학적 힘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지금껏 키웨스트에서 가장 크다는 수영장을 거쳐 혼인식장으로도 쓴다는 정원을 지나 1층으로 들어갔습니다. 복도에는 영화 포스터가 여러 장 붙어 있습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참으로 주옥같은 작품들입니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남녀 주인공인 게리 쿠퍼와 잉그릿드 버그만이 오랫동안 잊었던 기억을 일깨워 줍니다. 

거실 벽면 창문에는 처음 이 집을 지어 살았던 아사 티프트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불을 밝힌 천장의 샹들리에가 은은하고 우아합니다. 이탈리아의 유리 공예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에서 만든 수공예품이었습니다. 식당의 묵은 가구가 눈길을 끕니다. 18세기에 스페인산 호두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벽난로 위에는 30대 청년 시절의 헤밍웨이 초상화가 있어 싱그러운 풍모를 자아냅니다. 주방은 헤밍웨이가 직접 낚은 물고기를 손질하고 요리한 곳으로 그의 체취를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계단을 올라 2층 왼쪽 방으로 갔습니다. 폴린이 낳은 두 아들 패트릭과 그레고리의 유모인 아다가 사용한 방입니다. 벽면에는 파리 생활 때 헤밍웨이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잃어버린 세대(The Lost Generation)”의 사람들, 곧 파블로 피카소, 스콧 피츠제럴드, 게르트루드 스타인, 실비아 비치, 살바도르 달리의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두 아들이 사용했다는 옆방으로 갔습니다. 헤밍웨이의 사진으로 가득합니다. 젊은 군인 시절, 청새치를 낚았을 때, 집필하는 장면,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모습, 그리고 그의 네 부인의 사진이었습니다.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건 비단 이 여인들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놀라웠습니다. 안방에 놓인 피카소가 선물했다는 고양이 조각상이 새삼 그를 그립게 합니다. 옆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해설사가 마치 자신의 집안을 자랑하듯 열변을 토하며 떠들어댔습니다.

2층 베란다에 섰습니다. 정원과 오솔길이 보입니다. 헤밍웨이도 이 난간에 하루에도 몇 번씩 섰을 겁니다. 작품 구상, 스페인 투우 향수, 낚시와 사냥 열정, 술맛을 부추기는 노을과의 열애 등 숱한 상념들을 담았다간 쏟아붓곤 했겠지요. 바로 앞에 등대가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도 생각과 시름에 잠겨 여기 곳곳을 무수히 오갔을 겁니다. 고양이도 함께 말이지요. 

난간에 내리쬐는 햇살이 따갑습니다. 이 끝에서 저 모퉁이로 거닐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막순행(漠瞬幸, 막연한 순간들이 주는 행복)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다가 난간에 비스듬히 기댄 채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혹시 누가 압니까.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헤밍웨이의 흔적이 사진 속에 나타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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