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시인.

건너편 별채로 가기 위해 좁은 계단을 올랐습니다. 그의 집필실이자 서재입니다. 예전에는 2층 베란다에서 집필실로 건너가는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찾으면서 비좁고 낡은 다리를 이용하기엔 안전 문제와 불편함이 있어 철거를 한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아침 6시가 되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구름다리를 건너 집필실에서 정오까지 작업을 했습니다. 소설 쓰기가 거의 대부분이었겠지요. 그가 여기에서 쓰거나 탈고한 작품으로는 《무기여 잘 있거라》(1929년), 《오후의 죽음》(1932년),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1935년), 《킬리만자로의 눈》(1936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1937년), 《스페인의 땅》(1938년),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년) 등 여러 편입니다. 

키웨스트의 미국 최남단 땅끝 전망대와 쿠바는 90마일(144km)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10km 떨어진 지점에 작은 포구마을 꼬히마르가 있지요. 여기가 바로 소설 《노인과 바다》(1952년)의 무대가 된 곳입니다. 그러고 보면 헤밍웨이가 키웨스트와 쿠바 사이를 지나는 멕시코 만류에서 창 모양의 주둥이를 가진 청새치(striped marlin)나 전설의 물고기라 부르는 타폰(Tarpon) 같은 대형 고급 어종을 잡으면서, 그리고 죽음과의 치열한 의식 대립을 겪으면서 소설 《노인과 바다》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곳이었으리라 여깁니다. 

그는 오전 집필이 끝나면, 낮과 밤 시간에는 주로 낚시를 즐기고 잡은 물고기를 요리하고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서녘 노을을 감상했습니다. 

집필실로 들어가는 현관 출입문은 가족들이 사용하기 알맞은 아담한 크기였습니다. 다수의 관광객들이 드나들기에는 턱없이 좁았지요. 게다가 쇠창살로 막아 놓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사슴머리박제, 벽시계, 책장의 서적들, 안락의자, 탁자, 고양이 형상, 인형, 군인복장 초상화, 실내등, 모자, 타자기 등을 먼발치에서 보았습니다. 그가 글을 쓸 때마다, 쓴 글의 분량과 낱말의 수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벽은 아쉽게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터줏대감이 있습니다. 해양 인양 작업을 하던 스탠리 덱스터 선장이 헤밍웨이에게 선물로 준 스노우 화이트라는 고양이의 후손들입니다. 유명한 작가나 가수의 이름으로 불린 이 고양이들은 목이 말라 갈증을 해소할 때에는 ‘고양이 분수대’라 부르는 식수대를 사용했습니다. 죽은 뒤에는 정원 한 쪽에 묻혔고 무덤 앞에는 묘비까지 세워 놓았습니다. 헤밍웨이가 얼마나 끔찍이 고양이를 사랑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대대로 내려온 이 고양이들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헤밍웨이 고양이, 여섯 발가락 고양이, 벙어리장갑 고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는 지하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닥을 이룬 석회암과 산호를 파서 아주 힘들게 만든 공간입니다. 헤밍웨이는 이곳을 와인보관소(wine cellar)로 사용했습니다. 그의 술에 대한 강한 애착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관람을 끝내고 기념품 가게에 들렀습니다. 그의 소설을 비롯해 많은 물건들을 진열해 놓았습니다. 그 가운데에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타자기 위의 원고를 살피는 헤밍웨이, 키웨스트의 집과 그의 얼굴을 담은 25센트짜리 우표 그림, 헤밍웨이와 네 부인을 함께 모은 사진, 이렇게 석 장의 엽서를 사고는 박물관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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