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근, 징그럽게 많이 모아 놓고서.

▲ 진주 촉석공원에 300여 개의 장승과 솟대를 모아 놓고, 장승전시회(17일~25일)를 열었다.

진주에서 장승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징그럽게 많은 남근(男根)들이 모였더군요. 장승은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워 마을로 들어오는 온갖 것을 감시하고 검열하여,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했던 우리네의 대표적인 공동체 신앙물입니다. 주로 돌이나 나무로 부리부리한 모습을 새겼는데, 신라시대 처용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습니다.

▲ 퉁망울 눈, 뭉턱한 코, 넓은 턱, 장승의 형상은 처용에서 유래했을까?

내친김에 역병 퇴치의 기원을 담았습니다. 장승은 본디 나쁜 것과 사한 것의 출입을 막는 민간 신앙의 한 형태입니다. 그런 민간 신앙의 힘으로 신종플루의 퇴치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나 봅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더욱 기승을 부리는 사악한 신종플루입니다.

23일은 하루 동안에 신종플루 환자가 3000명 이상 발생하였다는데, 가히 대유행의 서막인가요?  전 세계가 신종플루의 대확산으로 큰 걱정에 빠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손씻기 등 철저한 개인위생이 요구됩니다. 세계보건 기구에서는 북반구에 겨울이 오면 최악의 경우 전 인류의 30%가 신종플루에 감염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데, 이를 어쩌나. 대장군님, 여장군님의 힘으로 이를 물리쳐 주십시오.

▲ 역병 퇴치의 기치를 내걸고
▲ 입구엔 쑥 등 한약재를 태우는 냄새가 진동한다.

▲ 병은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고?

어린 시절 내가 아프면 할머니께서는 짚불을 태워 그 연기로 나의 몸을 휘감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할머니만의 주문과 기원을 담아 짚불을 태웠습니다. 나는 그저 시시하고 겁나고 매캐한 연기가 싫어 몸을 빼고 도망갈 기회만 엿보았지만 할머니는 그게 아니었던가 봅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할머니의 긴 휘파람 소리입니다.

이렇게 나는 어린 시절부터 민간신앙에 길들어졌고, 성인이 된 지금도 민간신앙의 묘한 기운에 젖어 있습니다. 옛동네 입구의 오래된 장승을 보면 생명체의 신비한 힘을 습관적으로 느낍니다. 어릴 때 서낭당 고갯마루에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보고 지나칠 때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껴 혹시 나의 뒤통수에서 불가사의한 능력을 발휘하지는 않는지 자꾸 뒤돌아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내 의식 속에 살아 있는 민간 신앙의 신비한 장승은 어느덧 사라지고 희화화되고 장난감 같은 장승을 봅니다. 한편으로는 과학과 예술에 밀려 민간신앙이 퇴색해 가는 느낌마저 들어 씁쓸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많은 기원 중에서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남근(男根)상 장승도 만들어 숭상하기도 했겠죠. 옛날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그 비극이 오죽했겠습니까? 또한 득남을 얼마나 고대했겠습니까? 따라서 다산과 득남의 비원이 컸던 만큼 굳건한 남성의 장승은 여러 모로 옛사람들의 의식 속에 크게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 장승은 징그럽게도 많은 수의 남성이었습니다. 굳건한 남근을 통해서 요즘 사회문화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점점 위축되고, 왜소해져 가는 남성상의 회복을 기원하시나요? 이래저래 서글퍼지는 남성입니다.
▲ 천하대장군의 기상은 어디 가고 허약한 남성만 남았는가?

▲ 무엇을 기원하고 서 있는가?
▲ 장승과 솟대를 적절히 배합하여.

장승만이 아닙니다. 제주도 성박물관은 화장실 문고리도 남근입니다. 어쩌다 무심코 들른 시골 가든식당 문고리도 남근상입니다. 화들짝 놀란 여성분을 본 주인장은 그다지 미안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특이한 모습 즐기면 어때' 하는 태도입니다. 식당에 그것이 왜 있어야 하죠? 남자 체통 좀 살립시다. 

▲ 솟대

마을의 신앙대상물 중엔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나무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힌 솟대가 있습니다. 경상도 해안 지방에서는 '별신대'로 부르더군요. 삼한 시대 소도(蘇塗)에서 유래된 것으로 봅니다. 솟대의 장대는 잡귀를 막아주고, 그 위에 얹혀진 새는 풍농을 가져온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솟대는 농경시대에 자연 취락이 형성되면서 마을의 안녕과 수호를 맡고, 농사의 성공을 보장하는 마을신이 되었습니다. 또한 하늘을 향하는 새는 인간과 신의 매개자로서 인간의 영혼을 천상의 세계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솟대와 같은 의미로, 농가에서는 섣달 무렵에 새해의 풍년을 바라는 뜻에서 볍씨를 주머니에 넣어 장대에 높이 달아맸습니다. 이 볏가릿대(禾竿)를 넓은 마당에 세워 두고 정월 보름날 마을 사람들이 농악을 벌이는데, 이렇게 하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장승과 솟대는 동제(洞祭)의 신앙의 대상이며, 돌무더기 · 신목 · 서낭당 · 선돌 등과 함께 동제복합문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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