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동덩굴.

하얀 꽃과 노란 꽃을 동시에 피우는 나무가 있다. 분명 나무인데 이름 끝에 붙은 ‘초(草)’ 때문에 오해를 받는 ‘인동초(忍冬草)’, ‘인동덩굴’이 주인공이다.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견디는 덩굴’이라는 뜻을 오롯이 담고 있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추운 겨울을 참고 견디는 나무로 우리 민족성과 닮아있다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 하여튼 인동덩굴은 추위에 강해 서리가 내릴 때까지 생장을 계속한다. 또한 워낙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해 한번 뿌리를 내리면 여간해서 죽지 않고 잘 자란다. 

인동덩굴은 인동과의 갈잎덩굴나무이다. 제주도에서부터 중부지방에 걸쳐 만날 수 있고, 햇빛이 잘 드는 길가나 숲 가장자리에서 잘 자란다. 6~7월에 꽃이 한창이지만, 따뜻한 남부지방에서는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일찍 꽃이 피고 늦게까지 꽃을 볼 수 있다. 계절이 따로 없는 것 마냥. 꽃은 작은 야구방망이 같은 꽃봉오리가 터지면서 나팔 모양의 긴 통꽃으로 핀다. 입술을 다소곳이 오므린 모습 같다는 이도 있다. 다양한 표현만큼 오묘한 인동 꽃은 다섯 장의 꽃잎 중 네 개가 합쳐져 위로 선다. 나머지 꽃잎 한 장만 아래로 늘어지면서 다섯 개의 수술과 한 개의 암술이 혀를 내밀 듯이 길게 뻗어 있다. 처음 핀 은색의 하얀 꽃과 점점 금색으로 변한 노란 꽃이 함께 있다고 해서 ‘금은화(金銀花)’라는 별칭을 얻었다. 하얀색 꽃이 동생이고 노란색 꽃이 먼저 태어난 형이라고나 할까? 마주나게 달리는 잎은 긴 달걀 모양이다. 남쪽 따뜻한 곳에서는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지만, 위쪽으로 올라가면 낙엽이 진다. 그래서 엄격히 말하면 반늘푸른덩굴식물로 분류한다. 초록색의 열매는 9~10월에 검은색으로 익는다. 

‘금은화(金銀花)’에는 이름과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부부가 어렵게 쌍둥이를 낳았다. 언니는 금화(金花), 동생은 은화(銀花). 금화와 은화는 우애 있고 착하게 자라 어느덧 시집갈 나이가 되었지만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워 부모님이 몹시 걱정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 금화가 병에 걸렸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언니를 극진히 간호하던 동생 은화마저 앓아눕게 되었다. 죽음을 앞둔 두 자매는 “우리가 죽으면 반드시 약초가 되어 우리처럼 죽는 이들이 없게 하자”고 맹세하고는 한날한시에 숨을 거두었다. 그 이듬해에 이 자매의 무덤가에는 한 줄기 여린 덩굴 식물이 자라나더니 흰 꽃과 노란 꽃이 피었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금화와 은화가 꽃으로 변한 것이라 하여 금은화란 고운 이름을 지어 불렀다. 금화와 은화의 바람대로 이 인동은 약용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종기의 독을 빼어주고, 줄과 잎을 달여 해독제로 먹었다. <동의보감>에 “오한이 나면서 몸이 붓는 것과 발진이나 혈변에 쓰며 오시(五尸)를 치료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최근에는 차(茶)와 주(酒)로 이용하고 있다.  

‘인동초(忍冬草)’를 얘기하면 꼭 함께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 있다. 민주화의 상징, 김대중 대통령이다. 납치와 투옥, 가택연금 그리고 망명, 5번의 죽음의 고비까지 넘기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김대중 대통령과 혹독한 겨울을 꿋꿋이 이기고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뿜어내는 인동초가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인동초 곁으로 떠난 이희호 여사’의 안타까운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그때 신문과 방송에 인동초의 이름이 여러 차례 오르내렸다. 여성운동가이자 평생 동지였던 이희호 여사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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