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피나무.

굴피나무는 중부 이남에서 자라는 가래나무과의 키 큰 갈잎나무이다. 가지 끝에 기다란 꽃이삭이 달린다. 긴꼬리 모양의 수꽃이삭은 녹색이 도는 노란색으로 여러 개가 달리고, 그 가운데에 타원형의 암꽃이삭이 달린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깃꼴겹잎으로 7~19장이다. 끝이 뾰족해서 가죽나무의 잎과 비슷해 ‘산가죽나무’라고 불린다. 하지만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솔방울을 닮은 열매 이삭은 4센티미터 정도로 솔방울보다는 크기가 작지만 그 안에 날개 달린 씨가 들어 있는 점은 비슷하다. 9~10월에 짙은 갈색으로 익은 열매는 겨울에도 떨어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선 채로 달려있다. 열매의 모양이 흡사 타고 남은 성냥 알처럼 생겼다. 크기야 진짜 성냥보다 훨씬 크지만 기다란 가지 끝에 검은빛 도는 까까머리 둥근 열매가 정말 성냥알 같다. 이 모습 때문인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굴피나무를 겨울에 더 잘 발견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이 성냥을 알까? 여하튼 재미있는 사실은 굴피나무를 성냥개비의 재료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굴피나무는 성냥과 뗄 수 없는 사이인가 보다.

굴피나무는 흔히 굴피집을 만드는 나무로 오해받곤 한다. 이름에 ‘굴피’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굴피는 참나무과의 한 종류인 굴참나무의 껍질을 말하는데, 이 굴피로 지은 집이 굴피집이다. 굴참나무의 굴피와 굴피나무는 서로 쓰임새가 전혀 다른 별개의 나무이다. 굴피나무의 한 종류로는 비슷한 이름의 ‘중국굴피나무’가 있다. 이는 굴피나무의 사촌쯤 되고 잎 대궁 양쪽으로 조그만 날개가 나 있는 점과 열매 모양이 전혀 다르다.  

굴피나무는 한반도 중부 이남 우리 산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이다. 수 천년 전에는 지금의 참나무처럼 우리 강토 여기저기서 더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참나무나 소나무처럼. 굴피나무의 흔적은 먼 옛날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단다. 울산 옥현리 청동기 유적지, 전남 화순군 대곡리에서 출토된 원삼국시대 목관(木棺), 해상왕 장보고의 유적지가 있는 완도군에 통나무 목책(木柵)에도 비자나무와 함께 섞여 굴피나무가 나왔다. 1985년 완도군 약산도에서 발견된 고려 초기 화물선을 만드는 선박재의 일부에 굴피나무가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임금님의 목관으로도 사용될 만큼 사랑받았다. 한때 찬란했던 굴피나무의 영광은 왜 사라졌을까? 그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이웃 나무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존재감을 잃어버리긴 해도 더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며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옆 동네 고성 옥천사에는 200년생 이상 되는 굴피나무 노목군락이 있다. 

굴피나무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나무껍질은 질기고 물에 잘 썩지 않아 끈을 만드는데 쓰이며 어망을 만들기도 한다. 짙은 갈색으로 익는 열매는 황갈색 물을 들이는 염료로 이용되고, 열매가 달린 채로 꺾어 꽃꽂이 재료로도 쓴다. 아이들과 함께 숲에서 놀 때는 겨우내 주워 모아둔 굴피나무 열매를 하나씩 나눠주며 빗으로 사용해보라고 한다. 삐죽삐죽 틈 사이로 머리카락이 쓸려 내려간다. 가을에 잘 익은 열매를 찾아보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왜 빗으로 사용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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