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추나무.

텃밭에서 키워 밥상에 올리는 고추는 이미 우리이게 익숙하다. 하지만 산속에서 ‘고추나무’를 만난다면 어떤 반응일까? “고추나무가 있어?”, “왜 고추나무야?”라고 묻지 않을까 싶다. 꽃은 이미 5~6월에 하얀색 꽃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었고, 지금은 꽃보다 더 특이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단언컨대 고추나무의 열매를 보게 되면 그 모양에 매료되어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고추나무는 잎이 고춧잎을 닮은 데서 붙은 이름이다. ‘개절초나무’, ‘미영꽃나무’, ‘매대나무’ 등의 또 다른 이름이 있기는 해도 ‘고추나무’만큼의 임팩트는 없다. 여하튼 우리가 자주 먹는 고추는 풀꽃이고 고추나무는 염연히 나무이니 구별해서 불러야 한다. 고추나무는 고추나무과의 갈잎떨기나무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에서 자생한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에 분포하며, 높지 않은 산지의 숲 가장자리, 경사지 및 골짜기에서 잘 자란다. 원뿔 모양의 꽃차례에 자잘한 흰색 꽃이 여럿 모여서 핀다. 대개는 완전히 다 벌어지지 않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꽃에서는 은은하고 좋은 향기가 난다. 아까시나무의 꿀 향기 같기도 한 것이 더 산뜻하다. 꽃에서 나는 향기는 고추나무의 잎과 가지에서도 비슷한 향기를 뿜어낸다. 잎은 마주나고 작은 잎 3장으로 된 겹잎이다. 이 잎 모습이 먹는 고춧잎과 닮기도 했지만 고추나무의 어린잎도 이른 봄에 나물로 먹으니 이것까지 닮았다.

산에서 만나는 고추나무는 꽃이 없으면 별 특징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냥 스쳐갈 뿐이다. 하지만 잎 사이를 살짝 들춰보면 긴 잎자루 끝에 달려있는 열매를 보고는 그냥 지나쳐갈 수 없다. 7월에는 초록빛이었다가 9~10월이면 갈색으로 익는다. 끝부분이 마치 과자봉지 벌어지듯 벌어지는데 그 안에 연한 갈색의 씨앗이 들어있다. 고추나무의 열매를 마주한 사람들은 감탄사가 다 다르다. 누구는 향주머니 또는 복주머니 같다고도 하고 누구는 노리개 같다고도 한다. 나의 눈에는 옛날 어린아이들이 입던 파자마처럼 보인다. 허리에 고무줄을 달아 흘러내리지 않도록 쪼여있는 짧은 반바지 같은 파자마. 요즘같이 더운 여름날에 마에 풀을 먹여 만든 파자마를 입힌다면 어린 아이들 땀띠 걱정은 좀 덜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을에 잘 익은 고추나무의 씨앗으로는 기름을 짠다. 이를 성고유(省沽油)라 하여 기관지염과 이뇨제로 사용한다. 목재는 대개 나무젓가락이나 나무못을 만드는 데 쓰고, 불에 잘 타기 때문에 땔감으로 이용한다. 산자락에 자라는 고추나무를 요즘에는 정원수로 심기도 하는데, 하얀 꽃과 앙증맞고 재미있는 모양의 열매를 보기 위해서이다. 우리에게 나무보다 풀인 고추가 더 익숙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름만큼은 잊을 수 없는 고추나무에게도 애정을 가져보자.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섰다. 지루한 장마가 시작되었고 여름 내내 태풍도 서너 차례 쓸고 갈 것이다. 아이들도 방학을 하였고, 휴가 계획도 세울 때이다. 올해는 숲과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면 어떨까 싶다. 그 곳이 어디든, 즐겁고 건강하게 여름을 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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