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준하와 황군 장교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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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장준하와 황군 장교 박정희
  • 耽讀 시민기자
  • 승인 2009.11.03 20:2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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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출간 논란을 접하고

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자
<오마이뉴스>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지난달 26일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 "친일인명사전에 박 전 대통령을 게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가처분신청을 냈다고 2일 보도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면서 군 분야에서 인물 선정 기준 중 하나가 위관급 이상 장교와 오장급 이상 헌병으로 재직한 자였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40년 4월 신경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한 뒤 1942년 10월 일본 육사 본과 3학년에 편입, 졸업 후 1944년 7월 황군(皇軍) 육군 소위로 임관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기준에 의해 '친일파'로 규정됐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이런 규정에 대해 박지만씨가 "단순히 '일제시대'에 '군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제국주의의 대한민국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하였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이어서 박 전 대통령은 '일본군'이 아니라 '만주군' 소속이었다고 말했다.  

박지만씨 말처럼 일본국과 만주국은 겉보기에는 분명 다른 나라다. 하지만 만주국은 일본제국주의가 1931년 만주를 침략하기 위해 세운 괴뢰국이다. 만주국 수반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부의'였지만 그는 허수아비였을 뿐 실권은 일본 관동군 사령관에게 있었다. 관동군 통제를 받는 만주군이었던 것이다.  

만주신문 번역문
물론 일본군 소위라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은 아들로서 받아 들이기 힘들고, 박 전 대통령이 친일행위를 하기 위해 만주군에 입대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가 만주에 간 이유에 대해 <만화 박정희>를 지은 백무현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정희가 만주에 간 이유는 다소 복합적이었다. 부인과의 불화로 인한 도피 심리와 만족스럽지 못한 교사 생활 또한 권력과 출세욕이 함께 작용했다.(<만화 박정희 1>- 64쪽) 

하지만 박정희가 들어간 '만주군관학교'는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기 위해 친일 주구들을 훈련시켜 양성하는 학교였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가 만주군사학교에 들어갔을 때 식민지 수많은 조선인민들과 지식인들은 민족 독립과 해방을 위해 만주와 상해, 연해주에서 자신을 희생시켰다.  

보통학교 선생이라면 만주군관학교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그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박정희는 1942년 3월 만주 육군 군관학교를 졸업하는데 수석 졸업을 했다. 수석 졸업을 한 박정희 아니 '다카키 마사오'는 답사를 했다. 

"나는 오늘 충량한 황국신민으로서 천황 폐하와 부의 황제 폐하께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나는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만화 박정희 1>- 90쪽)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박정희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할 수 있지 않은가. 일제식민지하 문인들 중 시와 수필 내용이 일왕을 찬양하고, 태평양 전쟁에 참여를 촉구했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비판받는 이들이 많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로 시작되는 '오장(伍長) 마쓰이 송가(頌歌)'가를 지은 미당 서정주가 대표적이다. 

박정희 임시 육군 군인(군속)계
그리고 박정희는 만주육군군관 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육사에 들어갔고, 황군 소위로 임관 받았다. 백무현 화백은 <만화 박정희 1>에서 재미 언론인 문명자씨가 일본생도 출신들 증언을 듣고  "항일군 토벌에 나서면 벼력같은 목소리로 좋아했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물론 아직 어떤 공식 문서를 통해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황군 소위로 있으면서 독립군과 운동가들을 토벌하거나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과 광복군을 토벌한 황군 소속 장교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일본군에 끌려간 학병과 징용군들 중에는 탈출하여 항일군에 들어간 이들도 있었다.

그 학병 중에는 장준하와 김준엽이 있었다. 그들은 탈출하여 백범 김구 선생이 있는 중경으로 가기 위해 목숨 건 6천리 길 대장정에 나섰다. 장준하가 이 장정에 나섰을 때 박정희는 황군 장교였다. 목숨을 걸고 탈출하면서 조선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울 때 황군 장교로 있었던 박정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조국 독립을 위해 6천리 길을 나섰던 장준하 선생은 30년 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박정희 독재정권 치하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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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2009-11-08 14:04:45
독일처럼 청산할 것은 깨끗이 청산했어야 했는데... 한 개인에 있어서도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비난해야 할 것은 비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아닌 인간이니 과오도 있겠지요.

하이에나 2009-11-08 10:01:46
지역신문에서도 이런 기사를 보게되 기쁘네요.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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