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모르는 단어가 꽤 많다. 독서에 게을렀던 지난날을 자책하며 다시 그 단어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이 단어를 모른 게 과연 내 무식의 소치인지를 새삼 생각해 보는 일도 종종 생긴다. 예를 들면 어느 언론사의 기사 제목에 ‘사라진 소주성’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성(城)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무리 궁리해도 모르겠다. 경치 좋다는 중국의 소주를 말함인가. 다시 검색해 보니 뜻밖에도 ‘소득주도성장(론)’을 가리킨다고 한다. 소득주도성장이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도 늘어나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라는 것은 풍문에 얼핏 들어 짐작은 하겠지만 문제의 ‘소주성’은 정말 사람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이 언론사는 독자층의 얼마 정도가 ‘소주성’을 얼른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소주성이란 말은 새 물건이나 생각이 나타나 그것을 가리키는 새 말로 나온 것이 아니다. 여섯 음절로 된 말을 세 음절로 줄인 데 불과하다. 이렇게 말을 줄여서 쓰는 일은 휴대폰이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문자 메시지나 e메일을 보낼 때 속도를 더 내기 위해 유행되기 시작되어 급기야는 일상생활에까지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줄인 말 중 어떤 말은 재미있기도 하고 재치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생명이 오래가지 못한다. 그 재미와 재치 있다는 생각도 시간이 지나면서 흥미를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유형의 새 말은 지금도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 말이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데 있다. 이런 말은 아는 사람만 안다. 모르는 사람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국어사전에는 전혀 없는 말이다. 당장 인터넷 검색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몰라도 괜찮은 것인가. 그 흔한 신문 한 귀퉁이에 나온 말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면 그 기사는 사실을 명백히 알리자는 일이 되기는커녕 사람을 혼돈(混沌)속에 가두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는 도처에 깔려 있다. 큰 도시에 나가 건물의 간판을 보면 우리말은 오히려 어렵게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정치적 지도자의 성함을 함부로 부르기 어려워서인지 YS, DJ, JP 같은 말들이 유행하더니 급기야 기업 이름도 옛날 선경이나 금성으로 불리던 것이 SK, GS가 통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거기다가 ‘브로드밴드’니 ‘이노베이션’이란 말이 덧붙기도 한다. 탈북민들이 남한 사회에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 남한 말에 녹아 있는 외래어를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운 데에 있다고 토로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현실은 정말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아무리 국제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말의 오염(汚染)은 이미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말 속에는 정신이 깃든다. 제대로 된 말을 하는 사람은 정신이 바른 사람으로 보아 거의 틀림이 없다. 말이 지저분하면 그 사람도 지저분한 사람이기 마련이다. 나라말도 마찬가지다. 이상한 말이 정상인 것처럼 버젓이 쓰이고 우리말 속에 외래어가 넘쳐나는 현실을 두고 보아야만 할 것인가. 가장 좋은 말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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