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깨달으며]

▲ 송창섭 시인.

꿈꿀 자유마저 없는 자가 있습니다. 그를 생명체라 부르고 또 인격체라 말할 수 있을까, 혼란스럽습니다. 거저 목숨만 겨우 부지하는 존재라면, 살아있는 주검이라 표현한들 뭐 그리 야박하고 가혹하다 하겠습니까. 꿈꾸는 행위는 모든 인간의 정당한 권리이자 유린할 수 없는 자유이지요. 어느 누구도 감히 이를 짓밟고 앗아갈 수 없는 고유한 상상의 나래입니다. 

「시크릿 슈퍼스타」.

인도의 30대 젊은이, 싱그럽고 당찬 아드바이트 찬탄 감독의 첫 작품입니다. 영화는 페미니즘 즉 여권 확장주의라는 현실적이면서 불가피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1929년)에서 인류의 절반이 여성임에도 그들은 소수자이며, 가부장제와 성적 불평등의 피해자임을 밝힙니다. 여성의 물질적인 궁핍과 사회적 제약 그리고 활동 영역의 고립성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여성 독립은 이토록 해묵은 얘기이면서 지금껏 풀지 못한 난제라는 뜻이지요. 

아빠 파루크는 철저한 남성 지배 중심의 독선적 인물입니다. 아내 나즈마는 순종형 여성으로 폭언과 폭행을 당해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합니다. 딸 인시아는 가수의 꿈을 키우지만,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지닌 장벽 앞에서 “나 이제 꿈이 없어.”라며 체념합니다. 

그런데 아랍권 국가에서 평상복으로 착용하는 무슬림 의상 부르까(Burqa 눈만 드러내는 검은 색 옷)가 뜻밖의 역설적인 역할을 합니다. 신분과 용모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장면 때문이지요. 이 옷은 비아랍권 세계에서는 남녀 불평등의 상징처럼 여깁니다.  

인시아의 음악 재능을 알아본 유명 프로듀서 샥티 쿠마르와의 만남은, 작위적이고 익살스런 우연성이 강하지만 꿈과 희망을 이루는 디딤돌이 됩니다. 

감독이 베일을 벗습니다. 칼을 뽑습니다. 견문발검見蚊拔劍은 아니겠지요. 그의 의도가 정체를 드러냅니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무너뜨리는 혁명이 등장하는 겁니다. 사회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와 억압과 차별이라는 왜곡된 통념을 거부하고, 나즈마는 마침내 낡은 외투를 걷어 버립니다. 고리타분하고 비현실적인 남존여비사상의 희생양이 될 뻔한 인디아 탄생 또한 그녀의 잠재적 용기 덕분이지요. 공항에서 족쇄를 끊는 서류를 내밀고, 가수들 꿈의 무대인 그래미어워즈로 나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그야말로 통쾌의 극치요 정점입니다. 남성을 향해, 세상을 향해 이 시대 최고의 슈퍼스타는 엄마라며 뜨거운 포옹을 하는 두 모녀. 설정이 옛 동화와 닮은 꼴이지만 괜찮지요.

영화는 단순하면서도 고루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 구조를 지녔습니다. 불평등한 통념을 응징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한편 자유와 평등을 좇는 정당한 자기주장을 두고, ‘혁명, 반란, 독립, 해방’ 등으로 표현함이 적절한 지 고민을 하는 게 서글펐습니다. 

인류사에서 악습을 타파하고, 양성이 함께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줄기입니다. 이런 주요 관심사를 재치 있고 익살스럽게 다룬 점은 친밀감을 높이고 편안함을 줍니다. 덤으로 인도 특유의 의상과 노래와 춤은 그 자체로 적잖은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하지요. 그럼에도 화두의 진중함을 약화시키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약점이 인간적으로 보이는 건, 청춘 감독이 던져 준 아쉬움이자 매력이라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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