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무심코 켜 놓은 라디오에서 가곡 ‘봄처녀’가 흘러나온다. 정말 봄이 왔나 보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데, 아주 오래전 어느 봄날에 풍금을 치시며 목청 돋워 이 노래를 애써 가르쳐주시던 음악선생님의 엄한 얼굴이 떠오른다. 속으로 그때처럼 따라 불러 보았다. 따스한 봄기운이 온몸에 번지는 것 같다. 노래 한 곡이 사람 마음을 이렇게 설레게 할 수도 있다는 일이 새삼 마음에 와닿는다. 예술의 힘이다. 내친김에 노래의 가사 전부를 소개해 본다. 시조 두 수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 봄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오는 봄을 노래했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임 찾아 가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 볼거나”
위 시조시를 쓴 시인은 노산 이은상이다. 작곡자는 난파 홍영후다. 이 두 사람은 우리 현대 예술의 초창기를 개척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으나 사후의 평가는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홍난파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으로 알려진 ‘봉선화’를 비롯해 동요 ‘고향의 봄’, ‘낮에 나온 반달’ 등을 작곡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음악인이나 1937년 변절한 이후 1941년 작고할 때까지의 친일음악활동으로 인해 세인의 존경을 잃었다. 

노산 이은상은 1920년대 후반 일기 시작한 ‘시조부흥운동’에 동참하여 ‘가고파’,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등 아름다운 시조를 많이 썼다. 시조부흥운동은 우리 전통 시 형식인 시조를 현대시의 하나로 살려 쓰자는 운동을 말하는데 민족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가 빛난다.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일제에 의해 체포 구금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애국지사이자 시인, 역사학자로 존경을 받을만한 그의 명성에 논란이 되는 일은 해방 후 각 독재정권과의 유착 의혹에서 비롯된다. 그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글도 썼다. 특히 이순신을 찬양하는 글을 통해 특정 독재자를 부각시키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곡 ‘봄처녀’는 누가 뭐래도 봄을 대표하는 노래다. 홍난파가 친일을 했다 해서 그가 친일하기 전에 작곡한 아름다운 노래가 불리지 않는 것은 아니고 노산의 말년 행적이 이상했다고 하여 그의 문학적 업적이 사라질 리는 없어 보인다. 예술이 지닌 가치다. 그 예술의 가치가 그 예술가의 가치보다 크다면 예술가가 허물이 있다 하여 그 예술이 사라질 리 없다. 예술가의 본령이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작하는 데에 있다는 진리를 이 봄날에 거듭 곱씹어 본다.

다만 예술가의 허물은 역사에 길이 남는다. 그것이 역사의 엄정함이고 누구라도 그 몸가짐을 조심해야 할 까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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