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난데없는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박재삼문학제가 애매하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으로 6월에 열릴 예정이던 행사가 연기되더니 이 감염병이 쉽게 물러갈 기세가 아닌지라 부득이 사람이 모이지 않는 문학상 시상 정도로 행사가 대폭 축소될 예정이라 하는데, 아무튼 박재삼 문학을 시민들과 공유하며 대내외에 널리 알린다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는 어려워질 전망인 듯하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고자 박재삼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제목은 ‘꽃길’인데 옛 삼천포 사람들의 추억에 빠질 수 없는 갈대샘을 소재로 한 시다. 

지금의 중앙시장 북쪽에 있는 갈대샘은 옛날 수도가 없던 시절 삼천포 사람들의 주요 식수원이었고, 수도가 생겼어도 수도 놓을 여력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여전히 유일한 식수원이었을 뿐 아니라, 가뭄에 수돗물이 시원찮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전 시민의 목마름을 감당해 내던 샘이었다. 이 샘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기에 누구라도 물동이나 물지게를 이용하여 언제든지 물을 길어 먹을 수 있었다.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은 조랑말이 끄는 물수레가 옮겨다 주는 이 샘의 물을 사 먹었고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물동이를 이고 이 물을 운반해 먹었다. 그 운반은 주로 여성들, 즉 누이나 어머니들의 몫이었는데 박재삼 시인은 그런 사정을 시에다 담고 있다.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갈대샘까지 첫눈 뜬 이마로/ 새벽 안개밭을 갈고 오는/ 우리 누이의 길을 생각해 다오./ 그것이 우리집 안개밭이네./ 일순이네 집 막달이네 집에서도/ 그런 안개밭을 골고루 가졌으니/ 온 동네의 그것을 생각해 다오./ 그리하여 꽃이나 생각해 다오./ 갈대샘 꽃심에서 열려나간/ 꽃물어린 커다란 꽃을./ 세상은 아직 完全(완전)히/ 억울하다 떠들 건 못되네./

새벽에 눈 뜨면 맨 먼저 하는 일이 갈대샘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이었다. 이 일은 온 동네 집집이 공통된 일이었고, 그 새벽안개를 헤치고 누이며 어머니들은 각자의 ‘안개밭’을 가꾸는 셈이 된다. 이것을 크게 보면 갈대샘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벋어나간 안개밭이 되며, 그 전체를 시인은 하나의 큰 ‘꽃’으로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물동이를 이고 새벽안개를 헤쳐가는 우리 누이나 어머니들은 다 그 꽃의 일부가 되고 그 길은 ‘꽃길’이 된다. 그러니 이 새벽의 세상은 아름다운 꽃이 되고, 그 꽃을 이루는 역할을 한 우리 누이며 어머니들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는 셈인 것이다. 그러니 설혹 새벽부터 힘든 일을 했다고는 해도 크게 억울할 일만은 아닌 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가난한 사람들의 가족을 위한 노고와 정성을 꽃으로 아름답게 노래한 시다.

이 시는 박재삼 시인의 제6시집 「비 듣는 가을 나무」에 실렸는데, 같은 시집에는 역시 갈대샘을 소재로 한 ‘갈대샘 敍景(서경)’이라는 산문시가 실려 있다. 내용이 길어 다음 적절한 기회에 소개할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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