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수문 정보로 본 남강댐 방류의 적절성 논란

‘태풍 루사’ 때와 비교되는 남강댐 수문 관리
유입량 급증에도 여유 부린 방류량, 이유는?
기상청 예보는 무시했나…철저한 원인 규명 필요

8월 9일 낮 11시께 사천일반산단에서 가화천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아래쪽은 사천강 영향으로 맑은 반면 위쪽은 남강댐 인공방류수 영향으로 붉은 황토 빛깔을 띤다. 그만큼 사천지역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음이다.
8월 9일 낮 11시께 사천일반산단에서 가화천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아래쪽은 사천강 영향으로 맑은 반면 위쪽은 남강댐 인공방류수 영향으로 붉은 황토 빛깔을 띤다. 그만큼 사천지역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음이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2020년 8월 8일 오전 7시. ‘사천시청’ 이름으로 긴급히 ‘안전 안내 문자’ 하나가 지역민들에게 타전되었다. 내용은 이랬다. ‘남강댐 방류량 증가(4000톤→5000톤)로 침수 및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안내 문자에 지역민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혹시 이런 생각은 아니었을는지. ‘정말? 비가 그렇게나 많이 왔나?’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다음과 같은 의심이 작동했을 테다. ‘남강댐에서 사천만으로 초당 5000톤을 흘려보낸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인데, 그만큼 많은 비가 댐 상류에 내린 건가? 우리 동네는 그 정도로 온 것 같진 않은데?’

남강댐 제수문에서 8일 오전 7시부터 초당 5000톤을 방류하고 있는 모습.
남강댐 제수문에서 8일 오전 7시부터 초당 5000톤을 방류하고 있는 모습.

이 같은 의심이 얼마나 합리성을 띠는지는 저마다의 판단에 맡기자.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날 남강댐에서 사천만으로의 순간 최대 방류량은 초당 5390톤(오후 5시 40분)이었고, 이로 인해 사천시 축동면과 진주시 내동면의 일부 마을이 물에 잠기는 피해가 발생했다. 같은 시기에 섬진강댐과 합천댐 하류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특히 하동군에서는 화개면을 비롯한 섬진강 주변 곳곳에서 주택 침수 피해가 일어나 이재민이 크게 발생했다.

그러자 피해지역 주민들의 불만은 한국수자원공사로 향했다. 많은 비가 짧은 시간에 집중해 내린 탓도 있겠으나 ‘댐의 방류량 조절에 실패한 것’이란 인식에서다. 이런 불만은 자치단체장의 이례적인 기자회견, 광역‧기초의원의 항의 방문과 1인 시위 등으로 이어졌다. 모두 수자원공사를 향한 거센 비판이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에선 이 같은 비난과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 눈치다. 평소에 가진 댐 관리 지침대로 수문을 운영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자원공사 남강댐지사도 마찬가지다.

이에 뉴스사천은 남강댐에서 사천만으로 방류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8월 8일을 전후한 ‘남강댐 실시간 수문 정보’를 바탕으로 댐 관리의 적절성 여부를 짚어본다. 이 과정에 남강댐 제수문(=사천만 방향 수문)으로 초당 5430톤을 흘려보냈던 2002년 태풍 루사 내습 상황과 비교한다. 오로지 수치로 이번 방류의 적절성 여부를 따져보려 함이다.

지난 8월 6일~8월 9일 남강댐 사천만 방류량 수문정보
지난 8월 6일~8월 9일 남강댐 사천만 방류량 수문정보

8월 8일의 상황을 떠올리기에 앞서 남강댐에 관한 기본 정보부터 알아두자. 남강댐은 1969년에 준공한 다목적댐이다. 다목적댐은 식수와 농업‧공업용수를 제공하고, 전기도 생산하며, 갈수기엔 하천 유지용수를 흘려보내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 뺄 수 없는 역할이 홍수 예방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에 댐을 상당 부분 비워 놓았다가 집중호우가 내릴 때 순간적으로 물을 받아 내는 역할이다. 그런데 남강댐의 경우 이 기능이 약하다고 보고, 댐을 만들 때부터 사천만 쪽으로 인공방류구를 만들었다. 이로써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릴 때는 남강 본류가 아닌 사천만으로 남강 물을 흘려보낸다. 덕분에 남강 하류는 물론, 낙동강 본류까지도 홍수 걱정을 크게 덜고 있다. 그러니 인공방류구는 남강 본류엔 축복이요, 사천만엔 재앙이랄까.

그러다 1999년에 남강댐이 새롭게 거듭난다. 남강댐의 약점으로 꼽히던 접시형 물그릇을 보완한 것이다. 방법은 댐의 둑을 높이는 데 있었다. 이로써 이전보다 3배 정도 저수 능력을 키웠는데, 최대 저수량은 3억900만㎥(=톤)이다. 댐 높이(=EL 기준)를 51m로 높인 결과다. 정부와 수자원공사는 홍수 조절 능력이 커진 만큼 사천만으로 흘려보낼 물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 홍보했다. 참고로 이 댐의 계획홍수위는 46m, 상시만수위는 41m이다. 평소엔 41m를 유지하다가 홍수 상황에는 46m까지 수위를 올릴 수 있게 댐이 설계됐음을 뜻한다.

8월 7일 오후 6시 기준 기상특보 발효현황과 레이더 합성영상(사진=기상청)
8월 7일 오후 6시 기준 기상특보 발효현황과 레이더 합성영상(사진=기상청)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8월 8일 즈음으로 돌아가 보자. 수자원공사 남강댐지사가 제수문을 통해 사천만 쪽으로 물을 흘려보내기 시작한 것은 6일 오후 4시부터다. 이때 남강댐의 수위는 40.24m로 상시만수위에 조금 못 미친 상태. 전날부터 약하게 내린 비로 댐 유입량이 초당 600톤을 넘어서자 취한 조치로 보인다.(이하 유입량과 방류량은 모두 1초를 기준으로 한 양이다.) 남강 본류 쪽으로는 200톤이 조금 안 되게, 사천만 쪽으로는 300톤 안팎으로 방류가 이어진 게 7일 오후 1시까지다. 이때의 수위는 40.58m였다.

하지만 시간당 10mm 안팎의 비가 계속 내리면서 댐 유입량이 점점 늘어났고, 이 때문에 방류량도 늘었다. 7일 오후 11시까지 사천만 쪽 방류량은 1200톤 정도. 남강 본류 방류량까지 합쳐도 1600톤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이때의 유입량은 5400톤 정도로 유입량보다 3배 넘게 많았다. 댐 수위가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8일 0시 기준 남강댐 수위는 42.35m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때부터 4시간 동안 사천만으로 2000톤, 남강 본류로 400톤씩 흘려보냈다. 그러나 댐으로 들어오는 유입량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그 결과 댐 수위는 43.49m까지 치솟았다.

지난 8일 남강댐에서 사천만 방면으로 초당 수천톤의 물이 쏟아지면서 축동면과 곤양면 일부 마을이 침수 피해를 입었으며, 사남공단 역시 한때 침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지난 8일 남강댐에서 사천만 방면으로 초당 수천톤의 물이 쏟아지면서 축동면과 곤양면 일부 마을이 침수 피해를 입었으며, 사남공단 역시 한때 침수 위기를 겪기도 했다. 

남강댐지사가 방류량을 크게 늘리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제수문 기준 오전 5시에 3196톤, 7시에 3990톤, 9시에 4989톤, 11시에 5384톤을 기록했다. 같은 시각, 남강 본류 방류량은 585톤에 이르고 있었다. 전체 방류량을 늘렸지만 댐 수위는 여전히 오르고 있었다. 유입량이 7490톤 정도로 방류량보다 많았던 탓. 댐 수위는 오후 12시 40분에 44.47m를 찍고서야 내림세로 돌아섰다. 비가 그치면서 유입량과 방류량에 역전 현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위험도 한고비 넘겼다.

돌이켜봤을 때, 수자원공사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의문이 든다. 다른 말로 ‘늑장 대응’이 의심된단 얘기다. 방류량보다 유입량이 더 많음에 따라 댐 수위가 계속 오르고 있었음에도 남강댐지사는 8일 자정을 넘기면서부터 비상조치에 들어간 듯하다. 이는 사천시가 수자원공사 측으로부터 전달받아 지역민들에게 보낸 긴급 안내 문자로 짐작할 수 있다.

사천시가 발송한 안전문자 내용.
사천시가 발송한 안전문자 내용.

사천시는 7일 오후 10시엔 ‘오후 11시부터 방류량을 1200톤에서 2000톤으로 늘린다’는 내용을, 8일 오전 2시께엔 ‘오전 4시 30분부터 방류량을 2000톤에서 3250톤으로 늘린다’는 내용을, 8일 오전 6시 30분께엔 ‘오전 6시부터 방류량을 3200톤에서 4000톤으로 늘린다’는 내용을 담았다.

남강댐의 사천만 최대 계획방류량이 3250톤, 남강 본류 최대 계획방류량이 1000톤인 점을 감안하면, 남강댐지사는 유입량이 4000톤에 육박한 7일 오후 9시부터는 최대 계획방류량에 가까운 방류를 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이때의 수위는 상시만수위인 41m를 벌써 넘어서고 있었고, 무엇보다 댐 수위 상승 속도가 무척 빨랐다. 또한,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이미 나와 있었고, 실제로 7일 오후부터 남강 유역에는 시간당 10mm 안팎의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그 빗물이 남강댐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 빤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수자원공사가 댐 방류량 조절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동의하기 힘들다.

수자원공사가 ‘댐 방류량 조절 실패’가 아니라며 하는 설명은 “댐 관리 규정대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2년 태풍 루사가 불어닥쳤을 때의 상황과 비교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2002년 태풍 루사 때 남강댐 사천만 방류 수문 정보. 
2002년 태풍 루사 때 남강댐 사천만 방류 수문 정보. 

태풍 루사는 그 해 8월 31일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으로 많은 비를 동반해 큰 피해를 낳았다. 이때 남강댐의 사천만 순간 최대 방류량은 5430톤. 지금보다 조금 더 많았다. 같은 시각의 남강 본류 방류량은 400톤 정도. 그러니 총 방류량은 지난 8일 상황보다 적었던 게 된다. 반대로 당시 남강댐의 순간 최대 유입량은 1만4818톤으로, 이번의 9266톤(8일 오전 9시 20분)보다 훨씬 많았다. 유입량이 훨씬 많았음에도 방류량을 이번보다 더 적게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해답은 바로 ‘사전 방류’에 있었다. 미리 물그릇을 비우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태풍 루사가 많은 비를 품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에 남강댐지사는 태풍이 본격적으로 불어닥치기 시작한 31일 오후 2시에 댐 수위를 35.61m로 가장 낮게 유지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43시간 전인 29일 오후 7시부터 사천만 쪽 수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때 댐 수위는 40.34m였다. 비가 전혀 내리지 않고 있었음에도 제수문의 방류량을 점점 늘려 30일 오후 2시엔 700톤 가까운 물을 사천만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이 시각 이후로는 1000~2000톤 정도를 흘려보냄으로써 댐 수위를 급격히 낮췄다.

덕분에 태풍 루사가 초당 1만 톤이 넘는 빗물을 남강댐으로 계속해 쏟아부었음에도 7시간이나 버틴 뒤인 31일 자정에 이르러서야 사천만 최대 방류량(=5430톤)에 다다랐다. 이때의 댐 수위는 45.20m로 계획홍수위인 46m를 0.8m 남겨둔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댐 유입량이 이미 1만 톤 아래로 떨어진 상태여서 조금만 더 버티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댐 수위는 9월 1일 오전 2시에 45.48m까지 올랐다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태풍 루사는 사천과 인근 지역에 큰 피해를 낳았다. 하지만 미리 물그릇을 충분히 비워둠으로써 최악의 상황은 피한 셈이다. 이처럼 건기가 아닌 우기에는 물그릇을 비우면서 댐을 관리하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많은 비가 내릴 것이 예상될 때는 더욱 그렇다. 2003년 태풍 매미, 2006년 태풍 에위니아가 덮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엔 수자원공사의 대처가 달랐다. 심지어 사천에는 비가 얼마 내리지도 않았는데 침수 피해를 겪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철저한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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