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포스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포스터.

<신세계>에서 피보다 진한 우정을 나눴던 ‘부라더’ 황정민과 이정재가 7년 만에 다시 만났다. 피도 눈물도 없는 캐릭터에 비슷한 장르라 <신세계>의 잔상이 겹칠까 하는 우려를 뒤로하고 뜨겁게 질주한다. 다른 것 다 떠나서 하드보일드 액션이 주는 장르적 쾌감은 단연 최고다. 개연성 없는 허술한 서사란 불평도 있지만 이것저것 다 챙기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경우 역시 다반사임을 감안하면 시종일관 액션에 집중해서 달려가는 전략은 주효했다.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남(황정민)과 그를 쫓는 레이(이정재). 서로를 쫓고 쫓는 두 사람의 추격은 개연성보다는 본능에 가깝다.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죽어야 끝나는 핏빛 사투가 한국, 태국,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시종일관 묵직한 액션은 영화의 처음에서 끝을 향해가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단순한 스토리라인이라는 약점을 화려하고 강렬한 액션이 보완하니 오락적 쾌감은 배가된다. 

스톱모션 기법으로 리듬감을 부여하고 조명과 컬러 연출로 시퀀스의 정서를 만들어낸 촬영은 압권이다. 근래에 본 한국 영화 중 손에 꼽을 만큼 감각적이다. 그래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홍원찬 감독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액션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준 홍경표 촬영감독의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는 왕가위 영화를 통해 미장센이 영화에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지를 안다. 스텝프린팅(Step-Printing) 기법을 비롯해서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의 스타일리시함이 ‘왕가위 월드’를 구현해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세 가지 장점으로 요약된다. 액션, 촬영, 마지막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화룡점정이다. 황정민과 이정재는 눈빛 하나로 시퀀스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박정민은 이제는 재발견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반열에 오른 느낌이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차마 언급할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그의 캐릭터 소화력은 정말 놀랍다) 이런 장점을 견인하는 중심은 홍원찬 감독이다. 단순하고 기시감 가득한 서사와 플롯이라는 단점을 잊게 할 만큼 영화가 가진 장점에 집중한다. 감독 데뷔작인 <오피스>에서부터 번득이던 공간을 가지고 노는 감각은 여전하며, 공간이 가진 일상성과 공포, 그 위에 리듬감 넘치는 액션까지 얹어서 날아오른다. 느와르의 본능에 충실한 수작 한 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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