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인 1960년 봄에 학생이었던 형님 누님들이 무슨 구호들을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던 일을 본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부정선거에 항의하던 데모대였던 듯하다. 그것이 우리 지역의 4‧19였다. 

이듬해 학교 입학한 이후로는 당시 삼천포국민학교에서 열렸던 광복절 경축식에 그 학교의 학생으로서 매년 참가했던 기억이 새롭다. 각종 기념사를 듣고 독립유공자 표창 등에 이은 만세 삼창을 따라 하고 그 식전에 나온 사람들이 벌이는 시가행진에 또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다. 나라도 가난하고 사람들도 대체로 두루 가난했던 시절에 사람들은 그 더위를 아랑곳 않고 이 행사에 참가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일제의 압제에서 나라를 되찾은 일을 경축하는, 가난한 잔치였던 셈이다.

지금의 광복절은 어떤가. 일상의 밥상이 과거의 잔칫상에 비길 만하게 풍요로워진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취지는 퇴색된 채 광복절에도 내 편 네 편이 있어 서로의 입장을 비난하는 모임이 따로 열린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이 있더니 일제 잔재 청산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미래가 더 중요하므로 불필요한 분열 조장이 시의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크다. 친일파 청산에 대한 방식을 두고도 여러 의견이 있어 씁쓸하다.

올해 광복절 날에는 우리 지역 선진리성이 전국으로 송출되는 방송에 이름이 올랐다. 임진왜란 후 정유재란 때 당시 토성(土城)이었던 선진리성에 왜군이 주둔하면서 덧쌓은 왜성(倭城)이 흔적만 남아있던 것을, 사천시에서 수십억 예산을 들여 왜성으로 복원했다는 ‘왜성은 남고 우리 성은 사라져...’ 제하의 뉴스였다. 물론 선진리성만을 소재로 한 뉴스는 아니었지만, 이 선진리왜성의 오명은 두고두고 뉴스감이 될 것 같다.

뉴스는 아니지만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오래전에 쓴 수필이 다시 한 밴드에 ‘퍼 온 글’로 소개된 것을 보고 작은 분노가 일었다. 제목은 ‘일본 초등학생의 한국 수학여행’이다. 

내용은 불국사 앞뜰에서 입장 대기 중인 한국과 일본 학생들의 태도를 문제 삼은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무질서한데 일본 학생들은 질서정연했다는 사실과, 한국 학생들은 먹거리를 던지며 장난들을 치고 난 후 그냥 갔는데 일본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치우고 가더라는 일 등이다. 그러면서 일본인 인솔 교사는 자기 학생들에게 ‘조선은 옛날 우리의 하인 같은 나라였는데, 하는 짓을 보니 다시 우리의 하인이 될 것 같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이 교장 선생님의 결론이다.

하인이니 주인이니 하는 말은 침략 근성을 구체화한 말이다. 힘의 강약과 전쟁에 의지해 세상을 보려는 일본인의 추악한 일면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소풍 나온 아이들의 장난이었던 한 일탈을 두고 정색을 한 일본인 교사와 우리의 교장 선생님은 일제의 교육을 끔찍이도 충실히 받은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해가 갈수록 광복절날 생각은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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