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15×20. 2020.
길. 15×20. 2020.

테라스에 앉아 있는 살찐 참새를 닮았다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프랑스 샹송가수 에디뜨삐아쁘를 닮았다며 작은 참새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난데없이 “살찐”으로 내 인생에 다시 등장한 참새라는 녀석. 이거 참 난감한 일이다. 이후 핸드폰에 만보기를 설치하고 걷기 시작한 지 벌써 보름째가 되었다. “건강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예쁜 참새가 되려고 시작했습니다.”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을 뱉어내지만 사실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이유였다. 

만보걷기가 주위에서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함께 걷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온 문자에는 만보기 숫자로 가득했다. “정말 신나요, 저도 막 따라 걷고 싶은 거 있죠.” 소심한 사람들은 저 혼자 만보기를 돌리고 있다가 “덕분에 운동 잘하고 있어요.”라며 짧은 문자를 보낸다. 난 걸으라고 부추기지 않았다. 그저 내가 걷는 길을 끊임없이 SNS에 올려대기만 했을 뿐이다. 지도에 붉은 선을 그으며 족적을 남겼을 뿐이다. 때론 70장 넘는 사진이 동영상을 방불케 했을 뿐이다.  

걸으면서 보이는 것을 길을 배경으로 셔터를 눌렀다. 걷는 걸음이 목적이라 길을 넣고 싶었다. 아무리 예쁜 꽃과 건물과 담장도 길을 빼고서는 의미가 없었다. 한 컷에 길을 함께 넣는다는 것은 고수의 몸놀림이 필요한 작업이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순간 엎드리기도 하고 몸을 비틀어 주기도 한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피사체를 발견하면 재빨리 낚아채야만 한다. 오래된 낮은 아파트의 촌스러운 분홍 칠이 도시 한복판이나 유럽 작은 도시에 있었다면 사람들은 나처럼 사진을 찍어 댔을 거라 생각했다. 긴 담벼락을 지날 때 담쟁이와 풀들의 벽화를 길과 함께 넣었다. 가을이 온 줄도 모르고 햇빛을 피했지만 길바닥은 온통 가을이 뒹굴고 있었다. 그래서 가을을 길과 함께 찍었다.   

가야하는 곳이라 걸었다. 그리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차가 없어 걸었다. 소문을 냈더니 부러워하기에 걸었다. 농담 삼아 아들에게 3km 떨어진 마트까지 걸어서 찬거리를 사러가자 했더니 바로 수긍을 해버리는 바람에 걸었다. 친구에게 공원가자 해안도로 걷자 했더니 사양하지 않아 걸었다. 하루에 평균 500보도 못 걷던 나에게 걷기전도사라는 이름표를 제멋대로 붙여 주니 무작정 걸었다. SNS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저도 만보를 걷고 있다고 하니, 인사를 받고는 걷지 않을 수가 없어 계속 걸었다. 친구들이 커피쿠폰을 보내주어 더 걸었다. 내 대견함에 사진을 보냈더니 계속 날라 오는 문자는 “더” “더더” “더더더” “더더더더” 기가 막혀 더 걸었다.  

나는 어느새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걷고 있었다. 이상한 바이러스를 길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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