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8월 29일은 국치일(國恥日)이다. 이날은 공식 기념일이 현재는 아니다. ‘나라가 치욕을 당한 날’이라고 옮길 수 있는 말인데,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탄된 날을 가리킨다. 이날의 일을 일본 입장에서는 ‘일한합병’ 또는 ‘한일합방’으로 지칭하지만 우리는 그 용어가 우리의 의사를 무시한 강탈 행위를 정당화하는 말이라고 하여 지금은 잘 쓰지 않는다. 대신 1910년 경술년에 일어난 국치란 뜻의 ‘경술국치’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로 굳어지는 추세다. 

이 ‘국치일’이 조용히 지나간다는 생각이 해마다 든다. 야단스럽게 사람들을 분주하게 할 것까지는 없더라도 이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싶다. 

경술국치를 맞아 많은 사람이 나라를 찾기 위해 의병이 되거나 망명을 했다. 자결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중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던 「매천야록(梅泉野錄)」의 저자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자결 전 절명시 4수를 남겼다. 4수 중 특히 알려진 1, 3수를 소개한다. 번역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것이다.

“난리통에 어느새 머리만 허예졌누/그 몇번 목숨을 버리렸건만 그러질 못했던 터/하지만 오늘은 정녕 어쩔 수가 없으니/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만이 아득한 하늘을 비추는구나(亂離滾到白頭年 幾合捐生却未然 今日眞成無可奈 輝輝風燭照蒼天 - 난리곤도백두년 기합연생각미연 금일진성무가내 휘휘풍촉조창천)”

“새짐승 슬피 울고 산과 바다도 찡기는 듯/무궁화 삼천리가 다 영락하다니/가을밤 등불 아래 곰곰 생각하니/이승에서 식자인 구실하기 정히 어렵네(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 조수애명해악빈 근화세계이침륜 추등엄권회천고 난작인간식자인)”

1수에서는 진작 자결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는데 이제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실행해야겠다는 결심을 드러내었다. ‘바람 앞 촛불’은 ‘아득한 하늘’에 대비되는 ‘보잘것없지만 자기가 가진 양심’을 그렸다고 하겠다. 3수에서는 인간 세상에서의 지식인 노릇하기 어려움을 그렸다.

이 절명시에 감동한 만해 한용운 선생은 1914년 매천 선생의 유족에게 ‘매천선생’이란 시 한 편을 보냈다.

“옳은 데 가만히 나아가 나라의 은혜 길이 갚으시니/ 한번 죽음은 만고에 영원한 꽃으로 새로우시리 /이승에서의 끝나지 않은 한 남기지 마소서/ 고통스러웠던 충절 크게 위로하는 사람 절로 있으리(就義從容永報國 一暝萬古劫花新 莫留泉坮不盡恨 大慰苦忠自有人 - 취의종용영보국 일명만고겁화신 막류천대부진한 대위고충자유인)”

어느 시대에나 고통은 있게 마련이고 나와 다른 의견도 많다. 이 고통에 맞서며 옳은 것을 찾아가는 사람은 세월이 조금만 지나면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