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심장뛰는 소리). 20×15. 2020.
쿵쿵(심장뛰는 소리). 20×15. 2020.

방금 전까지 오고간 대화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이후 사람들이 나누는 어떠한 말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 가을밤 지리산 계곡물 소리만큼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지만, 우리 일행 일곱에 식당 주인부부까지 늘어난 식사 후 차(茶) 자리는 어느새 주제가 온통 식당주인의 훌륭했던 개와 가수가 된 딸아이의 이야기로 뒤섞여 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멋진 흥분을 보았다. 섬진강을 좋아한다는 말이 가장 좋다던 복숭아 뼈가 보이는 바지를 입은 중년남자의 힘껏 밝아진 눈빛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섬진강변에 달을 띄우고 이야기를 그리려 하는지 모른다. 농촌에서 창업을 꿈꾸는 청년을 만나면 애정이 간다는 회갑을 맞은 선한 농부시인의 눈빛이 빛났다. 그래서 산골 점방에서 이야기를 팔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저쪽자리에서 화제가 돌려져 버렸다. 눈빛을 보았던 나는 혼잣말이 나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섞이는 자리를 그다지 즐기지 않아! 관심밖의 이야기에 난 예의상 대답해 주거나 웃으며 또 버텨내야만 하는 자리가 되어 버리잖아!’

말을 다 잇지 못한 남자가 조용히 내게 물었다. “무슨 말을 들으면 가장 좋으세요?”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선뜻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언제지! 난 어떤 말을 들으면 가장 좋았지!’

집으로 돌아오는 국도는 비바람과 젖은 낙엽들로 차선이 제대로 보이질 않아 꽤 오랫동안 속도가 나질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무슨 말을 내가 가장 좋아할까.’ 늦은 밤 집에 도착해 작은 등 하나 켜고 책상 앞에 앉아서도 내 머릿속에는 이 물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때 말이 끊겨 화제가 다른 곳으로 돌려지길 잘했다는 생각을 아주 잠시 했다. 글씨이야기, 붓놀림, 한글서예. 공간을 너무 광적으로 좋아하니 내 공간 유희재(游喜齋), 독립된 나의 작업실........‘뭐라 대답했어야 했을까!’ 다음날이다. 미뤄놓은 숙제거리를 들고 낑낑대고 있으니 전화가 온다.

“찬은 몇 없어도 집 밥이니, 대강 호박잎 쪄서 된장 쌈 싸 먹게 건너오세요.”

심장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눈빛이 밝아지고 입 꼬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가 버린다. 몸이 따뜻해지고 누구든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여자거나 남자라도 그가 차려주는 집 밥 앞에 영혼까지 팔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남이 차려주는 집 밥입니다. 순간순간 가장 행복했고 가장 흥분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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