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추분이 곧 닿았으니 가을이 어느새 깊이 온 셈이다. 들판에 곡식은 마지막 여물 준비를 끝냈고 시들 것은 그것대로 길 떠날 채비를 차리는 중이다. 사람도 여물어야지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덧없이 또 가을을 맞는 허무감에 은연중 삶의 의미를 되새길 형편에 놓이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가을에 어울리는 풍경은 아무래도 갈대밭일 것 같다. 한데 어우러져 다 같이 바람에 휩쓸려 가며 누렇게 말라가는 장엄한 숙명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그런 까닭인지 갈대를 소재로 한 노래도 있고 시도 많다. 

요즘 트롯 열풍이 워낙 거센 터라 그런지, 갈대를 떠올리니 60년대 박일남 가수가 불러 크게 인기를 얻은 ‘갈대의 순정’이 먼저 생각난다. 작사와 작곡을 오민우라는 분이 했다고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을듯하지만, 그 노래의 가사를 옮겨 보기로 한다. 노래의 가사이니 당연히 장르는 시라 해야 할 것이기에 가사만을 음미해 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이다. 더구나 이 가사는 아마 어떤 시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암송할 수 있는 시일 것이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사랑엔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말아라/ 아 아 갈대의 순정//
말없이 보낸 여인이 눈물을 아랴/ 가슴을 파고드는 갈대의 순정/ 못 잊어 우는 것은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말아라/ 아 아 갈대의 순정//”

다소 어려운 느낌이 있고, 그래서 공부할 것이 무언가 있어야 좋은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진 분에게는 죄송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 노래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데에는 가사도 큰 힘을 보탰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쉽게 가슴에 닿는 갈대라는 비유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이 있다. 누군가가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라고 한 말이 머리에 남아 ‘사나이 마음’을 ‘갈대’에 비유한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지는 모르나, 이 가사의 핵심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듯이 사나이 마음은 오직 사랑에만 흔들린다’는 비유에 있다. 게다가 이 노래를 애송하는 사람들은 그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족(蛇足) 같지만, 대중가요의 가사가 순수문학이 아니니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기의 시가 대중가요로 불리기를 바라는 시인들이 그렇지 않은 시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실제 시에 곡을 붙여 애창곡이 된 노래가 많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그렇고 ‘립스틱 짙게 바르고’가 그렇다. 

트롯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왕 인기 있는 김에 더 의미 있고 감동적인 가사를 가진 노래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