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진집 '사람사는 세상'을 읽고

내가 그를 사진과 동영상이 아니라 눈으로 직접 만난 것은 딱 한 번으로 1991년 3월 18일이다. 18년 전에 만난 날짜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9주년 초청 강사로 내가 다녔던 대학에서 초청했기 때문이다.  

그가 연설한 내용이 무엇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굉장히 열정적이었고, '민주주의'라는 말을 많이 썼던 것 같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련그린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가 대통령 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꼭 찾아가리라 마음 먹었지만 차일피일 하다가 그만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가 어릴때부터 대통령 노무현과 농부 노무현, 그리고 삶을 놓았을 때 수많은 이들이 그를 떠나보내는 진한 눈물을 찍은 사진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노무현 재단이 엮고, 학고재가 펴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담은 442장의 사진집이다.

442장 사진 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사진 한 장이었다. 언제 찍은 사진인지 설명이 없어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눈이 참 선하다. 이제 두 분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이 사진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씨 뿌리는 대통령이 따로 있고, 열매 거두는 대통령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일하는 사람도, 또 평가를 하는 사람도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그렇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부는 바뀌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뿌린 씨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매를 거두었다. 그러면 당연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뿌린 씨를 이명박 대통령은 열매를 따야 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뿌린 씨는 아예 쳐다보지 않을뿐더라 오히려 파헤치고 있다. 정권과 정부도 구별하지 못하는 참 어리석은 일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권력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전직 대통령'보다는 '농부 노무현' 또는 '사람 노무현'으로 살았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권세보다는 농부와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를 많은 사람들을 따랐다.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던 이도, 사람 노무현에게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는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현직'이 아니기 때문에?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현직에 있을 때 권력을 자기 손아귀에 지는 것이 아니라 인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권력은 대통령이 아니라 인민이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왕의 권력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분배돼서 왕이 누리던 것을 일반 국민들이 누리게 되는 사회, 그것이 역사 발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소위 권력이나 특권이 일반 국민들에게 퍼져나가는 과정, 그것이 역사 발전이다.(2006년 2얼 26일 출입기자오찬, 176쪽) 

인민에게 권력을 내주는 일, 그것이 역사 발전이라는 그의 철학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그는 말했었다 권력을 쥔 자가 그 권력을 인민에게 내주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권력이 아닌 사람을 택한 노무현과 그 권력이 매몰되어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참으로 비교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권력이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2006년 4월 3일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 추도사, 102쪽) 

이명박 정권은 유난히 '공권력'을 강조한다. 공권력이 존재하는 이유가 인민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인데도 오히려 공권력을 동원해 인민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고 있다. 공권력에 복종하라는 정권치고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민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 주려고했다. 즉, 권력이 아닌 사람을 택한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시민들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를 알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소통이다.  

사람은 소통하고 살아야 한다. 지배하는 사람도 있고 지배받는 사람도 있는데, 내 희망은 이 차이가 작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 사이에 가장 큰 단절은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 관계가 다르고 따로 사는 거다. 이런 게 오래가면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잘 살겠지만 일반 국민들은 살기가 어려워진다. 권력은 높아지고 소통은 안 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자와 국민이 소통이 돼야 한다.(2006년 8월 28일 경복궁 신무문 · 잡옥채 개방행사, 192쪽)

하지만 지금은 그가 바랐던 소통이 아니라 단절된 세상이다. 권력이 시민들을 목소리를 아예 듣지를 않는다. 그러니 시민들 삶이 팍팍하다. 제발 우리 목소리 좀 들어 달라는 말을 한다고 오히려 닥달이다. 그가 그리운 이유다. 권력이 귀를 닫았다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 전 대통령 말처럼 시민이 하나가 되어 저항하여 권력이 시민들 목소리를 듣게 해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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