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도굴'

'도굴' 포스터.
'도굴' 포스터.

범죄영화의 하위 장르로 분류되는 ‘하이스트 필름(Heist film)’ 또는 ‘케이퍼 무비(Caper movie)’는 익숙한 플롯을 얼마나 재미있게 변주를 하는지에 달려있다. 트렌디한 음악이 흐르고 문이 열리면서 각자의 매력 혹은 능력을 뽐내며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묘하게 신경전이 벌어지지만 그들의 목적은 하나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무언가를 강탈하는 것.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위트가 넘치고, 캐릭터끼리 합을 이루며 만들어내는 조화는 아슬아슬해서 짜릿하다. 한국형 케이퍼무비의 전형이 된 <범죄의 재구성>은 이러한 케이퍼무비의 특징을 고스란히 살려서 대박을 냈다. 

<도굴>은 서울 강남 한복판의 ‘선릉’을 도굴한다는 발상만 참신할 뿐, 액션도 스토리도 딱히 돋보이는 게 없는 영화다. 그나마 내세울 것이 있다면 배우들인데, 이마저도 흐릿한 캐릭터의 혼돈 속에서 도굴은커녕 땅 파다 묻힐 형국이다. 영화를 소개하는 첫 번째 문장은 “고물인 줄 알았는데 보물이었다?!”이다. 그렇다. 고물과 보물은 한 끗 차, 아니 자음 하나의 차이에 불과하건만 다가오는 뉘앙스는 천양지차다. 그런 게 또 있다. 명작과 망작도 불과 모음 하나 때문에 의미가 천지가 개벽할 만큼 벌어진다. 

<도굴>이 카피문구처럼만 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급이 다른 삽질을 보여주겠다던 패기는 오프닝에서만 유효하다. 경쾌한 도입부가 지나면 영화는 너무나도 예측 가능한 경로를 안전하게 따라간다. 도굴에 복수라는 이야깃거리를 추가하지만 이 역시 영화의 중심을 흐릴 뿐이다. 캐릭터끼리의 관계는 느슨하고 반전을 노리기엔 펼쳐놓은 패가 너무 많다 보니 반전은 그냥 생색내기용 구색인 모양새다. 

시절이 하수상할 수록 팝콘 무비가 제격이다. 진정 숨쉬기조차 힘든 시간을 버티는 사람들에게 유쾌하고 통쾌한 영화 한 편은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 이른바 팝콘 무비가 ‘작품성이 없다, 그게 그거다’라는 오명을 감수하고 꾸준히 제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정하고 웃기다 보면 컬트 계열의 명작으로 남을 수도 있고, 예술성이 가미되면 시대의 명작이 되기도 한다. 매력적인 장르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 쉽고도 어려운 ‘잘’ 만드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지만, 성공한 케이퍼무비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감각적인 대사,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액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팀플레이, 없던 감성도 끌어올리는 OST 정도가 아닐까. 누구나 다 아는 이 요소가 제대로 적용된 영화를 만나기가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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