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20×15. 2020.
다시. 20×15. 2020.

붓을 잡는 사람이라 그럴까 내 나이보다 위 사람들과의 일상이 더 많았다. 어르신들을 모시거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러다 가끔 장난기가 발동할 때는 할배라 부르기도 하고, 아직도 청년 같은 그들에게 나이 앞에 5라는 숫자가 붙어 있으니 환갑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놀려대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이 마지막 12월을 넘기면 5라는 숫자를 받게 된다. 잠시 숨을 돌리려고 멈추어 섰더니 마흔아홉에서 쉰으로 건너가는 딱 그곳이다. 음력(陰曆)으로 계산하라 하고 만(滿)으로 하라지만 대쪽 같은 나이 앞에 군더더기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얼마 후면 지천명(知天命), 쉰이 된다. 

“저 조만간 같은 숫자 달아요. 반갑지요?” “그곳은 어때요. 정말 제가 하늘의 명을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견디어 낼만은 하던가요?” “신입이 이러한데 극진히 환영회 같은 거 해 주셔야지요.” “보내주는 사십대를 함께 초대할까요? 맞이하는 오십대를 초대할까요?” “앞으로 며칠 동안은 저에게 아주 특별한 하루하루가 될 거예요.” “어리광 부리던 덤 같은 시절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요즘은 숨쉬기조차 아까운 날들이었다. 수험생의 디데이처럼 아침 점심 저녁을 지나고, 동이 트는 새벽을 맞이하고 짙은 밤을 맞이한다. 하루를 보내고 또다시 하루를 보낸다. 특별하게보다는 거룩하게 하루를 넘긴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의 하루가 이만할까 여겼다. 한날 한날을 숨죽여가며 나를 향해 쏟아 붓는다. 아쉬움이 아니라 떨림이 동반된 흥분이었다. 

“사실 아직 닿아 보질 못해 잘 모르겠지만 꽤나 멋진 일이 일어날 것 같아요. 5를 가슴팍에 달고서 어른같이 살고 싶어서 저 사실은 4 달고 무척이나 달렸거든요. 5를 달고 속도를 내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무거워 거추장스러워요. 5를 달고서는 입을 닫아도 전달이 되고 귀를 닫아도 이해가 되는 그런 날을 상상해요. 누군가가 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그래서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삶이 엄중하지만 무겁지 않고, 활력이 넘치지만 가볍지 않는 그런 거 있잖아요.” 

5를 달면 누구나가 그렇게 되죠, 그치요? 뭐라고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요? 똑같다고요? 그게 무슨 어른이에요? 그럼 5 달기 싫어요. 그럼 다시, 만으로 계산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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