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조제'

'조제' 포스터.
'조제' 포스터.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계절마다 떠오르는 영화가 있지만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는 다른 계절에 비해 유독 아프다. 쓸쓸함으로 따지면 가을 영화가 한 수 위일 수도 있겠으나 아릿하고 가슴을 저미는 통증 같은 감정은 겨울 영화에서 도드라진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면의 따뜻함을 숨기고 있다. 이런 게 겨울 영화의 매력이라 누구나 가슴에 간직한 작품 하나는 있는 법이다. 이제 마음에 남는 겨울 영화 한 편을 더 보탠다. 한지민, 남주혁의 <조제>다.

비루하고 찬란한 그 감정,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로맨스/멜로는 참 어렵다. 종종 자기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감정을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떤 장르보다 잘 구획된 혹은 계획된 연출이 필요하다. 소설 원작이 있는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리메이크인 <조제>는 그런 의미에서 안전한 선택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작이 있는 영화를 다시 만든다는 것은 한편으론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고로 원작의 아우라를 벗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면 더 잘 만들거나 독창적 해석을 하거나 둘 중 하나다. <조제>는 후자에 가까운데, 원작의 정서를 수용하면서 특유의 분위기를 잘 이식한 새로운 결과물이다. 

영화는 아름다운 풍경과 그 속 인간의 감정을 따라간다. 시종일관 어둡고 우울하고 찬란하다. 영상으로 할 수 있는 감성 표현의 최대치를 뽑아내려는 듯 <조제> 속 공간은 감각적이고 매력적이다. 따뜻하고 슬프고 기쁜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몰입하게 한다. 이 참담한 계절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영화다. 철저히 계산된 연출에서 나온 미장센은 잔잔하고 연기 또한 담백하다. <조제>를 끌고 가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분위기다. 사랑이 가진 온갖 종류의 감정을 던져 놓고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폭발하는 지점을 찾아내게 한다. 영화의 정서를 따라가다 보면 깊은 바닷속 상처 입은 채 유영하는 물고기가 되거나, 서늘한 벽 아래 혼자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원작과는 또 다른 여운에 몸서리가 쳐진다. 시쳇말로 ‘갬성 터지는’ 영화인데 그에 머물지 않고 긴 꼬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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